처음 한강을 달려본 것은 3학점만 덜렁 걸어놓고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던 봄이었다. 마침 한강공원과 멀지 않은 곳에 살았고, 마침 같이 살던 언니가 한창 마라톤에 빠져있었으며, 나도 덩달아 한강에 몇차례 따라가볼 정도의 호기심이 있었고, 조깅은 거금을 들여 러닝화를 살 정도로 마음에 맞았다. 나이키 어플에 하루하루 기록을 쌓아가며 더 빨리 더 멀리 뛰었음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맘먹고 나가본 마라톤대회에서 10km를 한시간동안 뛰고 나면 또 굉장한 성취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이사를 가면서 한강과 멀어지자 달리기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이사간 동네에도 공원이나 운동장은 있었는데, 뛰고싶은 맘이 크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나는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강변을 달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작년 봄, 한창 오미크론이 유행할 때 코로나에 걸렸는데, 격리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너무나도 달리고 싶었다. 7년 전에 산 러닝화는 그간 거의 신지 않아서 상태가 괜찮았다. 나이키 어플을 다시 받았더니 예전에 달렸던 기록들이 남아있었다. 뭔가 기분이 띵하면서 찡했다. 한강공원을 찾아가 예전에 모아두었던 러닝용 플레이리스트를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7일이 아니라 7년간 격리되어 있던 사람처럼 한도없이 뛰었다. 그렇게 한시간을 내리 뛰고 시원한 바나나우유를 마시던 순간의 희열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리고 사흘 뒤 무릎 연골연화증 진단을 받았다. 그날의 한강도, 내 신발도, 흘러나오는 음악도 7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내 몸뚱아리는 아니었다. 정형외과에 백 단위의 돈을 쏟아 붇고 나니 얼마나 겁없이 행동했는지를 깨달았고 다시 그렇게 달리기와는 멀어지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의외로 조금 끈질긴 면이 있어서, 이제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지 두달째다. 올 봄 이사온 집은 한강변은 아니지만 안양천이 지척에 있다. 한두번 산책을 나가 보고 나니 다시 달려보아도 될 것 같다는 마음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대신 이제는 나이키 대신 런데이를 켜고 달린다. 런데이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어플인데, 걷고 뛰는 타이밍을 일러주고, 최소 48시간은 쉬라고 강조한다. 아직 나는 2분 30초를 뛰고 2분을 걷는 것을 반복하는 정도이지만 다치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덕분에 오늘 달리기를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건 7년 전에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아드레날린보다는 세로토닌에 가까운 느낌의 즐거움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오래 하려면 나에게 맞는 정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죽을 힘까지 짜내어 무언가를 이루어 낼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무작정 열정을 불태우다가는 내가 타버리고 말거라는 걸, 참으로 오랜 시간 돌고 돌아 배웠다. 나보다 빨리, 오래 달린 나이키 어플 인증샷을 보면 부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아직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달릴수 있는 무릎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은근한, 은근한 러너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