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의 끝자락에서 십일월을 생각한다.
계절이 주는 싸늘한 기운 때문인지 이맘때면 한 번씩 앓게 되고 나는 십일월을 죽음을 생각하기에 적당한 달이 아닐까, 몇 해 전부터 그런 생각해왔다. 쇠잔해져 가는 생명 앞에서 겸허해지는 달, 십일월.
그러자 인디언의 달력에서 십일월은 어떻게 불리웠을지 궁금해 먼지 쌓인 책장을 들춰 보았다. 역시나 하는 끄덕임이 일었다.
아라파호족의 십일월은,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체로키족의 십일월은,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저문 들녘에 물기 없이 말라가는, 한여름 무성했던 들풀들의 버석거리는 몸짓을 눈 감고 귀로 담아 보는 건, 까닭 없이 감은 눈꺼풀 사이로 얇은 물줄기가 새어 나오는 일이었다. 푸르름으로 빼곡했던 산등성이는 어느새 헐거워지고, 묵직한 찬바람만이 빗질하듯 온 산을 훑고 지나갔다. 지구가 잠시 비스듬히 어깨를 내린 것뿐인데, 사위어가는 늦가을의 태양빛은 하루하루 멀어져가는 계절의 숨결처럼 애잔하고, 나는 벌써부터 그 온기가 그리워지곤 했다. 십일월에는 오후 네시만 되어도 말이다.
종일 흐리다가 해질 무렵, 불 켜진 가로등 아래로 분무기를 뿌린 듯 안개가 흩어진 십일월에는 영화 <만추>가 생각나고 애나의 슬픈 고백을 알아듣지 못한 채 하오, 하오라고 추임새만 넣던 훈과의 비극적이지만 희극적인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몇 해 전부터 십일월이면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이란 책을 읽어야지 해 놓고선 이듬해 십일월로 미루고, 올해도 십일월을 하루 남긴 오늘, 아마 또 내년 십일월을 기약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랬던 십일월의 어느 날 아침, 아이와 길을 걷다 아이는 몇 발자국을 되돌아가 은행잎 사이에 섞여 있던 플라타너스 잎을 내게 가져왔다.
나는 아이를 보고 씩 웃으며, 기억해? 얘 이름? 하고 물었다.
응, 이플란토스.
오답을 당당하게 내뱉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 시리게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한껏 젖혀 웃었다.
또 다른 십일월의 저녁,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책길에 따라나선 아이는 몇 걸음 걷다 말고,
엄마 나랑 데이트할까 말한다.
산책이 데이트 아니야? 라고 묻자
우리 애슐리 갈까? 하고 눈을 반짝인다.
너 돈 있어? 라고 되묻자
돈은 엄마가 내야지 멋쩍게 대답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데이트 상대의 은밀한 데이트 신청이 깜찍해서 또 한 번 조용한 밤거리의 어둠 저편을 향해 크게 웃었다.
조금은 음침하게, 조금은 스산하게 하늘이 꾸물거리다 어느 날 비공식적으로 첫눈이 흩날리는 달
아름다운 시월과 화려한 십이월 사이에 침착하게 껴 있는 달
내년도 다이어리나 플래너를 준비하는 달
불조심 강조의 달
내가 태어난 달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달 - 십일월
그럼에도, 나의 십일월은 온통 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