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의 나는 이제 안녕,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완료라는 단어에 문득 꽂혀 한 줄 끄적일까 싶어 메모장을 열었는데 화면 오른쪽 상단에 ‘완료’라는 글자가 보인다. 찌찌뽕
완료: 완전히 끝마침
4주 동안 진행했던 스위치온 다이어트가, 브런치 글쓰기 프로젝트가 끝났다.
미루고 미룬 건강검진 결과는 딸아이 수학 시험 점수처럼 언제나 그렇듯 실망스럽다. 내 나이보다 더 늙어 있는 혈관나이. 체중 감량도 물론 하나의 목표지만 그보다도 비루한 육신을 리셋해서, 빵을 먹어도 덜 죄책감 드는 몸으로 되돌리는데 큰 의의를 두고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달력을 보니 마침 4주 프로그램이 끝나면 내 생일. 초밥 뷔페에 가서 연어초밥을 잔뜩 먹을 기대를 안고 시작했다. 한 달, 금방 가니까. 그리고 공교롭게 이 시기에 브런치 글쓰기 프로젝트가 시작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마감 종료일에 신청했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리셋해야 했으니 이참에 요이땅 하면서 둘 다 시작해 보자. 지금의 나로 또 5년 10년 살아가는 건 비에 흠뻑 젖은 남루한 몸을 이끌고 끝을 모르는 안개 자욱한 터널을 홀로 걷는 것만큼 막막하고 서러운 일이니까.
단백질 쉐이크만 하루 네 번 마시는 격정의 3일. 이 단백질 쉐이크에 삶은 계란 한 개만 먹어도 소원이 없겠다. 아님 단백질 쉐이크라도 원 없이 마셨으면. 이 와중에 학교 졸업 후 20년 만에 글쓰기 숙제라니. 암호가 설정된 남편의 컴퓨터를 켜는 것도, 퇴사 후 10년 만의 문서 작성도 어설프다.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시간이 낯부끄럽다. 일궈놓은 것 하나 없는 중년의 삶, 늘어나는 거라곤 몸무게와 혈압뿐인 무보수 전업주부의 삶을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직면하니 더욱더 초라해질 뿐이다.
일반식이 허용되는 나흘째부터는 비교적 평온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다. 평온이라 말하고 무색무취, 무미건조한 시간이라 쓰련다. 그리 먹고 싶던 삶은 계란을 먹다 보니 이번엔 여기에 삶은 고구마까지 함께 먹으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싶었다. 고구마는 3주 차에 허용되는 식품이다. 그럼에도 나는 욕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3주 차 식단에 접어들기 사흘 전, 결국 난 참지 못하고 닭 가슴살에 고구마를 넣어 닭갈비를 홀랑 해 먹었다. 정말이지 간장 베이스의 밍밍한 음식 대신 고춧가루, 고추장이 들어간 칼칼한 음식이 들어가야 브런치에 작가 신청 글을 제출할 패기라도 나올 것 같았다.
과일이 허용되지 않는 3주 차, 딸아이 간식으로 사과대추를 씻어주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지금이 아니면 내년 가을까지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사과대추를 이렇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식탁 맞은편에서 얄밉게 사과대추를 아삭거리며 먹는 아이를 흘깃 보다 태블릿 메모장으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이번주 과제는 지난주 첫 글의 퇴고다. 도저히 못 참겠다. 금단의 열매를 따먹듯이 죄책감은 잠시 접어두고 탐스럽고 매끄러운 사과 대추 한 알을 와작 베어 물었다. 아,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을 만큼 다디단 대추였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대추의 단맛을 조금이라도 붙잡으려 대추씨를 입에 문채 퇴고 작업을 했다. 지지부진한 퇴고를 거듭하다 홧김에 입에 문 대추씨를 퉤 하고 뱉어버렸다.
드디어 마지막 4주 차. 스위치온 다이어트의 마지막 고비는 주 3회에 걸친 24시간 단식이다. 문제는 단식 후 첫 식사가 탄수화물이 배제된 단백질 위주의 식사라는 것. 탄수화물을 섭취했던 지난 식사에서 다음 탄수화물 식사까지는 꼬박 48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처음 단식 후엔 빈속에 뭐라도 먹으니 그저 행복했다. 그런데 단식이 거듭될수록 24시간 단식 후, 분명 생선도 구워 먹고 고기도 볶아 먹었는데 먹은 것 같지 않다. 곡기가 들어가지 않아서 한없이 우울하다. 기력은 있는데 화가 난다. 보통 단식 후엔 위에 부담이 되지 않는 탄수화물, 그러니까 죽으로 달래줘야 하는데 말이다. 하필 마지막 글쓰기 과제는 재미있는 글 쓰기다. 아니, 몸에 당이 들어오지 않는데 웃을 일이 있겠는가. 갓 쪄낸 구황작물을 한 소쿠리 끼고 먹으면서 글을 써도 써질까 말까인데. 단식이라는 그늘뒤에 숨어있는 폭식처럼 비극을 뒤집어 애써 희극을 찾아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마지막 한 주를 보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다. 육아라는 방패 뒤로 숨어 살아온 엄마 사람인 나에게 스스로 지운 임무를, 끝내 완료하고 싶었다. 조금은 허술하게 그리고 어설프게 오늘에 이르는 동안, 찐득하게 막혀있던 내 혈관은 조금이라도 깨끗해졌을까. 세상을 향해 웅크린 채 쭈삣거리던 내 마음은 전보다 펼쳐져 있을까. 한 달 만에 5킬로 감량, 에디터 픽 혹은 구독자 급등 작가라는 수식어는 써내려 갈 수 없지만, 내 몸을 돌보고 내 마음을 살피는 나로 살아가는 그 첫발은 떼었다. 시작조차 하지 않고 주저하고 머뭇거렸던 시간이 길었다. 이젠 그저 묵묵히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다. 때론 빵을 옆에 두고, 막히는 문장 앞에서 쉬어가는 날도 더러 있을터. 하지만 결코 한 달 전의 나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테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55 사이즈의 출간 작가? 풉, 그건 약속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엄마는 될 거다. 그래야 애먼 애들에게 화를 덜 내니까. 요요 금지. 절필 금지.
#스위치온다이어트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