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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lee Aug 21. 2023

테드 창

오정세 배우 아님

<숨> 의 표지

SF는 무엇인가. 스타워즈를 떠올린 사람은 지금 당장 7,8,9 편을 보고 돌아오도록. 스타워즈는 우주 배경에서 서부극, 무협물, 그 외 판타지를 섞은 스페이스 오페라다. SF가 아니라. SF, 그러니까 과학 픽션은 다른 장르와 명확히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세계를 대하는 자세다. 테드 창은 SF의 특징은 우주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진행한다는 것, 이라고 말한다. 스타워즈는 발달한 기술이 나오지만 그 누구도 그 기술이 왜,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제다이나 포스는 아예 설명 가능한 것조차 아니다. 그럼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인간> 은 어떨까? 이 작품은 SF가 맞다. 자세히 설명하진 않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악당인 그리핀은 어떤 특수한 과학적 실험과 약물을 통해 투명인간이 되었으며, 이론상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 이야기의 규모도 작고 허무맹랑하지만 SF의 기본 전제인 세상은 과학으로 이해 가능하다는 점은 지켜지고 있다. 


테드 창의 소설들은 단순히 세상을 과학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나아간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과학으로 이해 가능하다면...우리의 머리 속 자유 의지는? 자유 의지를 과학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예측 가능하다면...자유의지가 존재하긴 하는 것인가? 테드 창 작가는 SF 작가답게 '인간의 영혼은 특별하다' 따위의 감상적 회피를 늘어놓지 않는다. 과감하게 '그렇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없고 우리의 정신은 분석 가능한 물질에 불과하다' 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가능성을 칭찬한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어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만들어낸 가치는 진짜니까. 어떻게 가능하냐고? 지금부터 따라가 보자. 안 읽은 사람을 위해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니 (단편 하나하나에 든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참신하고 새로운 데다 과학적 고찰과 이야기 밀도가 장난이 아니다) 일단 읽고 오는 걸 추천한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아라비안 나이트의 배경과 형식을 빌려 쓴 SF 소설로, 주인공이 2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문을 가진 상인을 만나 그 문을 사용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죽은 아내를 살리려 하지만 실패하는 이야기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액자식 구성을 그대로 따 와서 이 문을 써서 돈을 벌거나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게 무슨 SF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에 담긴 핵심 주제는 과학적이다. 이 세상은 미래와 과거가 동등하며 시간여행을 한다 해도 미래와 과거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아내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나 결국 아내가 죽는 역사는 그대로라던지. 즉, 여기서부터 자유의지는 없다는 주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 이 세상은 인과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정해져 있고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테드 창 소설이 아니다. 주인공은 아내를 구하지 못했지만, 아내의 유언을 전해듣고 그녀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없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는 구원이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하는 것도, 아내를 구하지 못하는 것도, 유언을 듣게 되는 것도 모두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지만 주인공이 얻은 행복은 진실이니까. 

2. 네 인생의 이야기

<컨택트>로 영화화되었다. 영화는 소설보단 훨씬 대중적이고 가벼워졌다. 소설은 소설의 특징, 그러니까 엄청나게 어려운 개념과 설명을 몇 페이지씩 늘어놓아도 독자가 알아서 읽고 이해하면 된다는 점, 을 잘 살려서 수학, 광학, 언어 들 여러 복잡한 개념을 연구하며 외계인들의 사고구조를 천천히 추리해나간다. 여기 나오는 외계인들은 현재, 미래, 과거를 모두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를 바꾸는 것이 자유의지인데 애초에 이자들은 미래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그렇다. 또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주인공이 연구자라 기계적이고 무감정한데 나중에 딸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결혼하고 자식을 가지는 미래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영화에서는 훨씬 낭만적으로 묘사했지만, 원래는 차갑고 무거우며 기계적인 단편이다. 그래도 주인공이 가족을 가지는 미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이미 다 정해진 미래지만 딸을 키운다는 것의 기쁨은 진짜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3.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디지언트라는 일종의 가상생명체가 나오는 단편이다. 디지언트는 상당히 독특한 존재인데, 언뜻 보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대화도 하고 성장도 하고 학습 기능까지 있다. 디지털 아바타를 써서 가상공간에서 생활하며 로봇 속에 들어가면 현실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고, 마음대로 삭제하고 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자유의지는 있고, 이들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간단히 말해, 사고를 마음대로 조작당할 수 있는 지성체가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 의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렇다. 또 또 자유의지 이야기다. 그런데 말이다...인간이 디지언트와 다르다고 장담 가능한가? 인간이 특별하다고 누가 그러던가? 인간 역시 훈련과 교육, 환경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물질의 집합 아닌가? 인간의 뇌와 디지언트의 프로그램의 차이는? 우리가 인간의 뇌를 복제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것은, 과학적인 시선에서 이야기했을 때, 뇌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기술이 부족한 것 뿐이다. 서론에서 말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과학적 시선에서 우리의 정신이 예외가 될 순 없고, 우리의 뇌 역시 분석 가능한 하나의 물질일 뿐이다. 물론, 테드 창 소설답게 디지언트들과 인간이 정서적 교감과 유대, 유사 가족애를 보여주며 디지언트에게 자유의지가 없더라도 가치 있는 삶을 만들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4.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자, 그렇다면 이번 단편의 내용은 무엇일까? 아마 안 읽은 사람도 이쯤 되면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기계 보모를 통해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가치없는 것은 아니다는 이야기를 하겠지. 이 단편은 기계 보모와 그것에게 양육된 인간을 다룬다. 에드먼드 데이시는 기계 보모에게 양육받은 결과, 오직 기계에서만 정서적 안정과 교감을 찾을 수 있는 인간으로 자라난다. 그의 아버지는 기계 팔을 조작해 아들과 교감한다. 보통 성스럽고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는 아기의 양육과 부모의 사랑 역시 기계로 대체 가능하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간 사이의 정서적 교감 역시 전혀 특별하지 않고 양육 방식에 따라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사람이 기계에서 안정을 찾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인간에게서 안정을 찾는 것 역시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양육 방식의 차이일 뿐. 실제로 에드먼드는 인간에게 양육받자 오히려 정신적, 신체적 악영향을 받았다. 인간은 양육 방식에 따라 다르게 자라나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기계와 같다. 디지언트처럼. 물론, 이제 말하면 입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먼드의 아버지가 기계 팔을 써 아들과 교감하는 모습은 인간이 기계와 같은 특별할 것 없는 물질이라도 우리는 부성애와 같이 특별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5. 우리가 해야 할 일

예측기는 시간을 뛰어넘어 신호를 보낸다. 버튼을 누르면, 이 장치는 일종의 타임머신을 써서 과거로 신호를 보내, 버튼을 누르기 1초 전에 빛을 깜빡이게 만든다. 무슨 수를 써도 이 기계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계를 누르건 누르지 않건, 그 모든 사실은 정해져 있다. 문제는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점점 삶의 의지를 잃어버려 식물인간이 된다는 점. 이 단편은 그냥 노골적으로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던 없던 평소대로의 삶을 살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해도 듣지를 않는다. 결말 역시 상당히 차갑다. 중요한 점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거짓이라는 것을 바로 인류의 기술력, 그러니까 예측기를 통해 알아냈다는 것. 보통 인간의 영혼은 과학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 인류는 본인의 과학 기술로 자신들의 자유 의지까지 규명해 버렸다. 서론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자유의지가 과학에서 예외일 이유는 없다. 우리의 영혼 역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인간에게 영혼 따위는 없고 우리의 사고 역시 특별하지 않으며, 기술로 부정당할 수도 있다. 

6. 바빌론의 탑

상당히 독특한 세계인데, 바벨탑을 실제로 지은 세상이다. 이 세계에서 태양과 별은 우주가 아니라 실제 하늘에 떠 있으며,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빛의 구체다. 세계에는 천장이 있고 인류는 탑을 쌓아 세상의 끝에 도달한다. 그리고 하늘을 뚫어버리고야 말지만, 하늘을 뚫어 나온 곳은...땅 속 동굴이었다. 이 세계는 하늘과 땅이 연결된 구조였던 것이다. 결국 인간이 무슨 짓을 하건 신에게 도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바벨탑은 원래 인간의 의지와 오만을 경계하는 이야기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 더 냉혹하다. 바벨탑은 할 수 있었는데 중간에 막힌 이야기라면, 이 책의 탑은 그냥 처음부터 뭔 짓을 해도 안 될 일이였으니까. 즉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계의 이치, 즉 과학으로 규명된 우주의 원리를 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안 될 일도 되게 한다지만, 작가는 딱 잘라 말한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우리의 의지는 그런 특별한 힘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규명된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고. 물론 작가는 탑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노력, 의지를 상세히 보여주며, 설령 처음부터 안 되는 일이었다 해도 그들의 노력에는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7. 숨

역시 굉장히 독특한 설정을 자랑하는데, 티타늄으로 이루어진 기계 인류들이 사는 세상이다. 이들은 공기가 가득 찬 공기 탱크, 즉 폐를 연료 삼아 움직인다. 그러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해부한 결과 진실은 그것보다 더 복잡했는데, 단순히 신체 동력뿐이 아니라, 이 기계인류의 뇌까지 공기를 연료 삼아 작동하는 기관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이들의 폐는 지하의 초고압 공기 저장고에서 고압의 공기를 공급받는 구조인데, 점점 공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즉 공기 저장고의 공기가 다 떨어지는 순간, 그러니까 모든 곳의 기압이 같아지는 순간이 오면 이들은 단지 에너지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고 자체를 정지하게 되는 것. 이것은 아주 명백하게 열역학에 대한 은유로,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라 우주의 온도가 모두 같아지고 가능한 모든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환되어 우주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별들이 모두 핵융합을 멈추고 우주가 멸망하는 순간. 즉 우리는 세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세계의 필연적인 멸망을 알게 되었다. 인간도 세계도 특별하지 않고 유한한, 단순한 물질이다. 주인공이 자기 자신의 뇌를 해부해 찾아낸 것은 영혼 따위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자유의지 역시 단순한 기계의 작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이것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왜 하필 주인공이 해부하는 부위가 뇌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하던 간에 상관없이, 과학에 의거해 우주는 멸망할 것이고, 우리의 자유의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단편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자신들이 멸망하고도 남을 자료를 만들어 후대에 전해주듯이, 우리의 삶 역시 필연적으로 유한하지만 그래도 가치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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