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에는 관광객이 많았다. 도시가 많은 서쪽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와 상황이 달랐다. 서쪽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동쪽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자의 얼굴을 하고 있달까. 웃음과 설렘을 담은 표정을 지으며, 가족이나 연인, 친구끼리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저 사람들도 모처럼 놀러 온 걸 텐데 괜히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대비되어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더욱 실감 나기도 했다.
기대보다 많진 않았지만 동부에 와서 자전거 여행자를 종종 만날 수 있었다. 막상 만났을 때는 서로 가는 길이 바쁘다 보니 대화를 나누거나 친해질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전후까지 마을이 나올만한 곳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숙소를 구할 수 있으니까. 지나쳐가는 자전거 여행자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 역시 같은 사정이기에, 일부러 자전거를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점점 말할 일이 없어졌다. 그저 바다를 보며 묵묵히 달렸다 자전거 길 위에서 다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면 고갯짓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짧은 끄덕임이 소중하고 고마웠다.
해안을 끼고도는 길은 낙타 등의 연속이었다. 짧은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의 반복. 긴 업힐은 힘이 들긴 해도 긴 다운힐로 보상받는데, 낙타 등은 뿌듯함도 없고 체력만 더 빠진다. 투덜투덜 대면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또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금방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낙타 등을 몇 개나 넘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투덜거릴 기력도 없어져 꾹꾹 입을 다물고 페달을 눌러 밟았다. 오래간만에 긴 구간이 나왔을 때, 오히려 안도했다. 그래도 이 길을 올라가면 당분간은 내리막이겠구나. 이번에 내려가면 좀 쉬어야겠다. 그 생각 하나로 힘을 쥐어짜 냈다.
텅 빈 도로를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하나 보였다. 누군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중인지 짐받이에 가방이 볼록하게 달려 있었다.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목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졌을 때 반대편에서 오던 남자가 외쳤다.
-힘내요, 곧 내리막 나와요!
“네, 힘내세요!”
스쳐 지나가는 짧은 찰나였다. 인기척은 점점 멀어져 갔고 눈앞엔 다시 조용한 도로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울컥 눈물이 났다. 이 길을, 똑같은 길을 타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면 그랬다. 영월, 지리산, 소백산,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로 다녔던 길들이 떠올랐다. 그런 곳을 타고나면 말 몇 마디 섞지 않아도 끈끈함이 생겼다. 같이 고생을 한 전우 같았다. 동료애 같은 것이 가슴속에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이국의 땅에서 생전 처음 달려보는 길에서도 똑같이 그랬다. 그 사람이 안장 위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유대감이 들었다. 버스나 기차를 같이 탄다고 해서 이토록 유대감이 드는 것은 아닌데, 왜 유독 자전거를 타면 그럴까. 아마 몸으로, 두 다리로, 힘들게 움직여서 그런 것 같다. 얼마나 힘든지 아는 것. 그 자체가 공감의 행위였다. 이때까지 달려온 길을, 앞으로 달릴 길을 그도 나도 알고 있다는 것이. 다운힐을 타면서 조금 울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는 것만큼 힘이 되는 게 없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자전거를 타고 내 눈 앞에 나타나서 페달을 돌리고 있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게 없었다. 오랜만에 긴 업힐을 타봐서, 그 끝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 역시 자전거를 타고 있어서. 복받쳐 울었다. 울고 나니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