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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sunlee May 18. 2024

" 허망한 이야기 "

ㅣ방문이 열리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서없이  “ 내가 여행 가기 전에 금목걸이를 모아둔 검은 파우치를 어디에다 두었는지 도통 생각나지 않아 “  하며 아침인사를 대신하는 게 아닌가


 푸석한 얼굴과 평소보다 이른 기상이  어젯밤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게 영역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잠을 쉽게 들지 못해 잠자리에 들기 전 소파에 드러누워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티브이  소음과 함께 취침예식을 치르듯 종아리 마사지를 받으며 모든 신경을 종아리로 보내고서야 겨우 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신이었다.


 잠시 후  쌕쌕 거리며 코를 골아 숙면에 이르는 듯해 살며시 마사지를 중단하면 곧이어 반쯤 감긴 눈으로  잠이 완전히 깨기 전 본격적인 잠을 자야 한다며 자기 방으로  가기를  서두르고 했다.
그런 잠자리 예민함으로 인해 각방을 쓴 지가 수년이 되어 버렸다.

예상하기로는 어제도 잠자리에 들자마자 원치 않게 불쑥 머릿속을 차지한 것은 여행 가기 전 금목걸이 파우치 행방이 묘연해 온갖 기억력을 총동원해 자기의 동선을 복기하며  머릿속에서 이곳저곳 헤매다가 차라리 일어나 의심되는 곳부터 점검을 해야겠다 하여 그 한밤중에 홀로 옷장이고 서랍이고 다 뒤집어엎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일을 시작한 지가 여러 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말 못 하고 있다가 어젯밤을 지새우며 너무 화가 나고 지쳐서 혼자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며 자책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나 몰래  집안 모든 곳을 다 찾아보아 대충 확인해 보았는데  아직 찜찜한 곳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딸네집 별채 캐비닛 안에 던져 넣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나에게 그간의 사실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었다.

먼저 전화를 걸어 딸에게 찾아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진정 도와주려면 가서 자기가 찾게 해 주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집에서는 물론 동네 모임에서도 오래전 동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소상히 기억하고 사람이름, 그 아이들 이름 까지도 기억함은 물론 모임 돈 관리도 도맡아 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똑순이로 정평이 나있는 터라 자존심도 있지만 자기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된 상황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았다.


 한 시간 거리의 딸네 집에  가 보았으나 그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 낭패의 심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발생하기 오래전부터 옷장이 있는 방 한곁에 더 이상 입지 않을  옷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도네이션 할 생각이라고 해 차고 한 구석에 옮겨 놓았다가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담기 위해 걸어 놓았던 옷걸이를 제하고자 하나씩 정리해 봉지에 집어넣은 다음 곧바로  레스큐 미션에 도네이션 하고 왔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뒤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옷장이 있는 방에서 어디에다 숨길까 생각하다가  그 옷무더기의 옷과 옷사이에 그냥 던져 넣은 것으로 기억된다며 당장 내일이라도 그곳에 가서 찾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하기가 그지없었다.    
그 옷무더기를 옷걸이와 함께 한꺼번에 옮길 수없어 세탁바구니에 옮겨 담느라고 몇 개씩 나누어 접어 넣었고, 차고에서 옷걸이를 제하고 봉지에 넣을 때 하나씩 넣었기 때문에 만일 옷과 옷사이에 있었더라면 발견되던지 무게로 인해 바닥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그곳에 묻어나갈 확률이 없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 옷가지에 묻어 나갔다 할지라도 그 옷들을 내려놓고 오는 날에도 넓은 마당에 각종 잡동산이들과  봉지더미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가운데 그 조그마한 파우치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은 했지만 은신이는 막무내기였다.

하지만 은신이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다음날 아침에 그곳에 가기로 하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흥분이 가라앉자  내일 그곳에 가지 않을 거라고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마저 날려 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그녀의 축 처진 어깨에서 볼 수 있었다.

그 금목걸이들은 미국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구닥다리 스타일의 귀금속들을  한국방문 때 다 가지고 나가 요즈음 유행하는 스타일로 바꿔서 자기가 쓰다가 딸들과 며느리에게 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라 더욱 가슴이 쓰려하는 것 같았다.

은퇴 이후 오래전부터 거래해 왔던 턱시도 렌털 가게에서 은신에게 일주일에 하루만 이라도 나와 도와줄 수 있냐는 제의가 있어  무료했던 백수생활에 숨통을 터 줄 거라며 흔쾌히 수락하고 매주 수요일은 은신의  출근으로  나 홀로 집에 있게 되어  청소나 텃밭 및 정원일 등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 작금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진 것 같아 은신이가 출근 한 수요일을 잡아 방 하나씩 돌아가며 벼룩이 잡듯 세세히 꼼꼼히 뒤지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는 은신이가 주장하는 레스큐 미션에 묻어 나갈리는 만무하고 어디엔가 집안에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신이가 나에게 했던 말들을 종합해 보면 자기 방, 옷방, 그리고 어디엔가 툭 던져 넣었다는 말을 근거로 은신의 방부터 수색에 들어갔다.

 
옷장의 옷과 옷 사이에, 코트의 주머니, 가방 속, 다소곳이 모아 있는 신발박스 속까지, 서랍과 선반은 물론이고 혹시나 해서 침대밑이나 화장대 뒤편까지, 이렇게 수색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은 한 여자가 살아가는데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한가?  그렇다고 사치한 여자도 아닌데 …. 만일  내가 찾는다면 얼마나 고마워할까 상상하며 온종일 검은 파우치를 찾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거실과 부엌까지. 그렇다 보니 살림에 그다지 필요치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이 참에 정리하게 되었다.


일은 벌여졌으니 대충 할 수도 없고  찾는 물건은 보이진 않고 지쳐 갈 즈음 어머니가 한국에서부터 공수해 보내준 골동문갑을  열게 되었는데  그 안 작은 서랍 속에   묵직한 검은 파우치 있어 흥분된 마음으로 끈을 풀어  그 안을 열어보니  오래된 귀금속 목걸이와 반지들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에 길이 남을 보물을 찾은 듯 두근거림이 있어 먼저 내 마음을 진정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한 숨을 쉰다음   은신이에게 전화를 걸어 평상시의 전화하듯 차분함을 잊지 않도록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서두부터 그 목걸이를 찾았다고 말하기보다 그 안에 내용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시큰둥한 목소리로 “ 지난번 한국방문 때 함께 금은방에 가서 보지 않았어 “ 하며 왜 갑자기 그 걸 묻느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 내가 오늘 문갑을 열어보니 검은 파우치가 있는데 그게 네가 찾는 게 아니야? “  물었더니  그것들은 자기도 알고 있는 것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도 그 목걸이들을 보아 알고 있어 찾는 게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나 역시 실망이 컸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하는 말이 “ 이제 더 이상 그 걸 찾지도 말고 그것에 대해 언급도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요즈음 금목걸이 광고나 금이라는 단어도 듣기 싫어 내가 믿기로는 그 옷가지 속에 휩쓸려 들어간 게 분명하고  누군가 그걸 찾아 기분 좋게 쓰겠거니 하며 잊을 거야 “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듯 단호하게 말했다.

느끼기로는 이제 마음을  접고 더 이상 그로 인해  안타까워하며  잠못이루어 공연한 것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그 후로 더 이상 찾지도 않았고 목걸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 둘 사이에 금기처럼 지켰다.
하지만 나는 필요가 있어 다른 물건을 찾을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더 찾아보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무렵 나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 중에 갑자기 화장실에서
“ 엄마! “ 하며 짧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더니 목에 수건을 두르고 머리는 젖어 하늘로 뻗친 대로 머리와 얼굴의 경계 부분은 검은 염색약으로 떡칠한 모습 그대로 거실에 나타났다.

나는 놀라 무슨 일인가 하여 쳐다보았더니 염색약으로 손이 젖어있어 조심스레이 잡고 있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그동안 그렇게 찾았던  검은 파우치가 있었다.

지난 2월에 친구들과 약 2 주일 간의  코스타리카 여행으로 집을 비우게 되어 나름대로 생각해서 귀금속을 숨긴다 하여 생각해 낸 것이 화장실 캐비닛 안 염색 도구들이 있는 바스켓에 그냥 던져 넣은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 바스켓 안은 거들떠보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였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총명하던 은신이 자신마저도 즉흥적인 결정으로 인해 그 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찾게 되어 하이 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하고  안도했지만  그동안의  마음 씀씀이와 잠못이루며 애간장 태웠던 그 시간들에 비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며 한 마디 한 것은

“ 허망하다. “ 였다.

그 한 마디가 은신의 한 달의 시간을  대신해 보여주는  대답이었다.

‘ 허망하다 ‘라는 말은 종종 사람들이 치열하게 누구를 사랑하고,  그 어딘가에 있을 그 돈을 위해,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핏대를 올리며 원수같이 싸워 이기어  손에 원하던 것을 쥐고 나면  잠깐의 기쁨뒤에 찾아오는 허탈감이랄까?

 지난 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렇게 잠 못 이루며 온 힘과 정성을 다해 그렇게까지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이 고작 이것이었던가 하는 실체에서부터 오는 솔직한 처음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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