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으로 포장된 불평등..

by 기분울쩍

예전에는 그냥 밤새워서 외우고 대학을 갔다. 학력고사 문제를 많이 맞히는 순서대로 소위 좋은 대학을 갔다. 암기위주 객관식 시험이라 가난한 집 아이도, 과외 안 받아도 머리만 조금 있다면 책상에 오래 앉아있으면 개천용이 많이 나는 시대였다.


그러한 교육이 학교를 입시학원 화하고 대학을 서열화하고 학생들의 전인교육에 맞지 않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개혁이란 이름으로 변화해 왔다. 수학능력시험, 논술, 내신강화, 입학사정관제, 이제 고교학점제까지 이제 전문가들도 공부해야만 입시제도를 알 수 있을 만큼 복잡해졌다.


그럼 지금 교육현장은 개혁에 취지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가? 학교는 잠자는 곳, 공부는 학원에서.. 영어유치원에 초등의대반.. 아빠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입시를 좌우하는..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교육이 변질되고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과도한 입시부담에서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성적에 따른 격차를 줄이다 보니, 스펙 쌓기라는 형태로 자행되는 가진 자들의 차별화가 또 다른 격차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부모의 직업과 자식의 직업이 동일해지는 계급의 대물림이 벌어지고 있다.


학력고사는 점수라는 수직적 단일지표에 기반한 제도로 비정하기는 했지만 투명하고 공개된 제도였다. 최근 입시제도는 일단 복잡하고 불투명하다.


부르디외는 교육제도가 복잡해질수록 상류층은 자신의 경제적 자본을 활용해 계급의 되물림을 가능케 한다고 지적했다. 창의성, 리더십, 소논문 등 소위 스펙은 단기간에 쌓기는 어렵고 좀 사는 가정환경에서 체화되면서 길러진다. 돈으로 부정입학을 하지는 않지만, 가진 자들은 거짓 공정으로 포장된 입시제도를 통해 태생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떤 교육제도가 좋은 제도인지는 알기가 어렵지만, 최소한 현재의 한국의 교육제도는 기회의 균등을 통한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우리는 공정이라는 거대한 메트릭스에 갇혀서 교육이 부를, 계층을 대물림 하고 있는 현재를 외면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자체가 메트릭스를 부숴버리기보다는 그 메트릭스로 들어가서 공정으로 포장된 불평등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부동산과 자녀 교육에서 우린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수많은 위선을 목도해 왔다.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제도를 만든다는 그리고 공정한 입시제도를 만든다는 명목하에 제도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가정환경이 능력이 되는 자신들에게 영구적으로 유리한 교육제도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이런 순환이 안 되는 사회는 절대적으로 곪게 되어 있다.


현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개혁에서 교육개혁이 앞선 순위에 없다는 것은 이미 그들도 기득권화되어 있고 그들고 그 제도하에 수혜자라는 방증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교육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 편이지 우리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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