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사랑하는 아이

4화. 아이의 말에 또 안도한다.

by 그림티



아이의 예중 입시를 시작하며 남편과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의 교육만큼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엄마이지만 정작 중요한 결정으로 고민이 깊어질 때는 남편의 한마디가 큰 조언이 된다.

돌이켜보면 첫째를 키울 때의 나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엄마였다. 젊은 엄마의 열정과 욕심이 앞섰고 교육과 입시 앞에서 늘 더 빠른 선택을 하려 했다.

하지만 큰 아이 둘을 키워낸 시간과 30년을 교육 현장에서 보낸 경험은 꼬마 그리미의 교육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게 했다. 이제는 조급함보다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이 앞선다.

앞서 끌고 가기보다는 아이의 속도를 바라보며 판단하려 한다.


꼬마그리미를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에서 미술을 전공할 아이로 결정하게 된 이유는 전문가로서의 계산보다 훨씬 근본적인 데서 시작되었다. 아이가 보내는 하루의 대부분이 이미 미술로 채워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종일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또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미술로 흘러갔다.

그 과정에서 남편의 한마디가 내 복잡한 고민을 정리해 주곤했다.

“꼬마 그리미가 미술 안 하면, 도대체 누가 해?”


솔직히 말하면 과거의 나는 아이들의 교육 앞에서 꽤 완고한 엄마였다. 내 정보와 판단이 맞다는 확신으로 아이들을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각자의 길을 잘 걸어오자 남편은 선택의 순간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며 지지해준다. 아이들을 위해 오랜기간 공부하고 쌓아온 엄마의 정보력과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욕심보다는 여지를 남기고 아이보다 앞서가지 않으려 애쓴다.

이제는 엄마가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고 받쳐주는 사람이 되려한다.

그래서 입시 미술학원에서 속도로 몰아 붙일때 나도 그 속도로 같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컨디션과 감정을 먼저 들여다 보려 애쓴다. 눈앞의 예중 입시만을 보고 끌려가지 않고 입시라는 큰 그림을 제대로 바라보며 걸어가려 애쓰고 있다. 실기에 쏟은 시간들은 입시 막바지가 되면 충분히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방학 실기가 과열되자 스물스물 걱정이 또 올라온다.

‘초등학생에게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그럴 때마다 오히려 남편이 더 단단하게 말한다.

“미술학원 두 타임 하고 와서도 집에서 또 그림 그리는 거 보면 지금 선택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아.” 정말 그렇다. 8시간 그림을 그리고 돌아와 패드로, 종이로 또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혼자 안도한다.



오늘도 아이는 하루 8시간 수업을 마치고 하원길에 또 조잘조잘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 벽돌을 10장 그렸는데 처음엔 너무 황당해서 선생님한테 이걸 다 그리라고요? 이 말이 튀어 나왔어.”

그러다 웃으며 말한다.

“근데 정신 없이 그리니까 8시간이 금방 갔어. 급하게 나오느라 도시락 통도 놓고 왔어.” 나는 걱정이 앞서 묻는다.

“힘들지 않았어?”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엄마도 8시간 그림 그려봐. 할만해.”

“엄마는 못할 것 같은데?”
“강남에는 12시간 하는 데도 있대!” 아이의 말 속에서 내 걱정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입시반을 시작하며 함께하던 아이들 중 하나둘 미술학원을 떠난다. 엄마의 기대만으로 시작했던 아이는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했고 미술을 좋아하지만 4시간을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아이도 있었다.


예중 미술 입시는 정말로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믿고 지켜보는 부모가 함께 견뎌야 하는 과정임을 실감한다.

오늘 나는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정성껏 싸고 연필을 하나하나 깎으며 조용히 응원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지옥 같지만 미술학원에 가는 건 재밌다는 아이.

예중 미술 입시는 결국 그림을 사랑하는 아이만이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아이의 얼굴에서 매일 확인한다. 부모가 할 일은 그 길을 대신 걸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힘을 낼 수있도록 조용히 옆에 함께해 주고 지지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또 배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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