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몰입의 시간
주말 오후,
아이는 어김없이 작은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눈썰매장을 다녀오는 길에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인데 집에 도착 하자마자 다시 반짝이는 눈으로 “집에 와서 만들 게 있어.”라고 말한다.
씻고, 자리를 펴고 마치 설레는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후다닥 앉아 펜을 들고 종이를 꺼낸다.
아이의 일상은 늘 그리고 만들기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몰입의 깊이에 부모인 나조차 놀랄 때가 있다. 허리가 꼬부라질 만큼,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다리에 쥐가 날 만큼 아무 말 없이 집중해 무언가를 그리고 만드는 모습은 남다르다고 표현하고 싶다.
무엇을 하든 집중과 몰입의 밀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저 말을 걸지 않고 지켜본다.
슬쩍 들여다보니 오늘의 작업은 어릴 적 인형 놀이를 재해석한 창작물이다.
인형의 바디를 8등신 비율로 그리고, 옷과 소품을 하나하나 디자인하고, 색칠하고, 코팅까지 한다.
멀쩡한 코팅기가 있음에도 굳이 손으로 하나하나 하는 핸드메이드 수제 코팅
이제 5학년,이것을 만들어서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다.
놀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만드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아이.
몇 시간 공들여 만든 작품을 소중히 모아두는 타입도 아니다.
결과보다 과정, 소유보다 몰입.
아이의 창작은 언제나 그랬다.
아이는 ‘작품’을 남기기보다‘창작하는 순간’에만 흥미를 느낀다. 어찌 보면 가장 심플하고 본질적인 창작 태도이다. 덕분에 이쁜 쓰레기가 쌓이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나는 아이의 작업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겨두고 모른 척 정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집 구석구석 크고 작은 창작물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5학년이 되며 아이의 창작 영역은 눈에 띄게 확장되었다.
어릴 때는 그리고, 만들고, 오리고가 전부였다면 이제는 경계를 나누기 어려울 정도다.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 스토리를 쓰고 그림을 더해 미니 종이책 만들기, 종이로 소품을 만드는 창작 놀이, 손그림과 패션 디자인 스케치, 인형 놀이를 기획하고 세계관 만들기 , 제페토에서 스타일리스트처럼 코디하기 ,건축탐구 '집' 보고 아이패드로 공간 디자인하기, 꼬마 작가처럼 책을 쓰는 작업 등 이 모든 것이 서로 결합하며 창의·융합 활동으로 확장되어 간다.
아이의 하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 실험실 같다.
누군가는 묻는다.
“어릴 때부터 특별하게 키우신 거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아이는 특별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아니었다.
워킹맘이었기에 하루 종일 함께하지도 못했고 늘 곁에 붙어 있는 엄마도 아니었다.
다만 분명히 지키려 했던 것이 있다.
퇴근 후 짧은 시간이라도 짧고 굵게 충분히 안아주고 놀아주고 사랑해 주는 것.
아이의 정서는 양적인 시간이 아닌 질적인 시간으로 충분히 채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는 어린이집 생활과 단체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배려와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 늘 친구들 사이에서 편안한 아이였다.
유아교육기관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은 단 하나였다.
“얼마나 잘 놀 수 있는가?” 그래서 선택한 곳은 놀이 중심의 자연·생태형 어린이집이었다.
3세부터 6세까지 하루 종일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 결정은 육아서와 교육서를 통해 보았던 한 문장에 대한 확신이었다. " 어린 시절 잘 뛰어논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아이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깥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놀며 성장했다.
그 시기의 자유롭고 열려 있던 환경과 억지로 통제하지 않았던 자율적인 놀이의 시간들이 정서와 뇌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지금의 창작 성향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엄마의 촉으로 분명히 느낀다. 아이는 그렇게 즐겁게 뛰어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몰입하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미술진로 아이는 어릴 때부터 타고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마음껏 놀 수 있었던 시간과 몰입을 방해받지 않았던 환경 그리고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 받았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남다름’으로 드러난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