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80km 떨어진 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결혼을 하면서 회사 기숙사에서 짐을 빼고 비교적 시외버스를 쉽게 타고 출퇴근할 수 있는 동네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거리로 따지면 엄청 멀게만 느껴지지만 정확히 버스로 1시간여 걸려 제법(?)다닐만한 출퇴근 시간이었으며 부족한 나의 수면은 버스에 맡긴 채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장, 단점이 있었다. 장점은 회식에서 늘 일찍 귀가 면제권을 가질 수 있었고 웬만하면 잔업을 하지 않았다. 단점은 피로가 알게 모르게 쌓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년이면 과장진급을 앞둔 시점, 중견기업인 이 회사에서 과장이라는 직급이 주는 의미는 연봉이 한번 크게 점프한다는 의미였다.
아내는 공공기관을 다니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늘 배움에 목이 말라 있으며 호기심이 많은 친구이다. 성향으로만 따지면 우리 둘은 완전 반대. 그런 우리가 결혼하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점은 참으로 미스터리하다는 점이다. 국제 개발학 석사까지 마친 아내는 연애할 때 늘 박사공부까지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게 실현 가능성이 있든 없든 간에 무조건
"나는 네 편이야"
이 이미지를 각인시켜 주기 위해
"그래 그래. 내가 지원해 줄게. 다 해봐"
라고 말을 하곤 했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아내는 하면 한다는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