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연이은

by 카키앤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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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나 합격했어 "


아내의 목소리에서 기쁨과 동시에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뒤이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메아리치듯 합격했어라는 단어가 내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그동안 고생한 아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겁을 먹기 충분한 40대라는 나이에서 이루어낸 성과이기에 감격스러움이 파도같이 밀려와 내 안구의 유리창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복잡한 감정이 일어났다. 기쁨과 자부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지금 생각해 보니 두려움이라니 참으로 나약한 나였다.

시간이 흘러 아내는 덴마크 학교에 최종 합격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내는 정말 한다면 해내는 사람이었다. 연애 시절부터 느껴왔던 그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이미지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의 아내가 덴마크로 떠난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동안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내가 그토록 쉽게 약속했던 것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내년에 과장 진급을 앞둔 나, 그리고 덴마크로 떠나는 아내. 우리의 삶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내를 위해 서프라이즈 축하파티를 해줄 생각이다. 마침 아내가 나보고 축하파티라도 준비하라는 듯 귀가가 늦는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소소한 파티상을 계획했다.




그날 밤, 우리는 조용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지원 과정부터 면접, 학교 지원과 장학금까지 아내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연스레 우리의 앞날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아내와 연애 시절 우리는 1년 가까이 롱디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당시 아내는 UN기관에 계약직으로 네팔 파견을 앞두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알면서도 나는 당시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당연히 감내하고 잘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팔 대지진으로 당시 아내는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사실 아내의 안전을 핑계 삼아 내가 더 강력하게 돌아오길 강요했다. 어쩌면 그때 나는 롱디를 잘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시는 아내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기에 지금 이 순간 나는 기다렸다. 아내가 먼저 말해주기를. 먼저 말해줘라고 눈으로 아내에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의 질문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함께 가줄 거지? 덴마크 "


그렇지! 0.001초 만에 나는 그래라고 대답했다. 아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대답을 하는 컨셉을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을 함께 나누었다. 아내의 꿈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약속했던 나였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 직면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될까? 과장 진급을 앞둔 시점에서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일까? 하지만 아내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꿈에 대한 확신을 보며 그래, 이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우리 둘 다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임을 깨닫는다. 나 역시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커리어를 모색하고, 내 삶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3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우리는 해외에서의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체류가 아닌,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을 목표로 하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두려움과 기대, 그리고 사랑이 뒤섞인 채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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