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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을하 Apr 22. 2024

폐지된 계좌로 돈이 들어왔다

지난 매거진 스토리에 이어 이번에도 독일에서의 환불 에피소드를 풀고자 한다. 살다 보면 일이 다 있는데, 아무리 계획하고 생각해서 행동도 예상과 빗나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약 5만 원 남짓 되는 물건 하나를 독일 쇼핑몰에서 구매했다가 영 맘에 들지 않아 반품 신청을 했다. 물건이 판매자에게 도착하기 전, 나는 그 물건을 살 때 썼던 은행계좌를 폐지하기로 했다. 어차피 환불에는 14일 이상 소요되고 + 계좌 폐지는 한 달이 걸리기 때문에, 돈을 받고 계좌가 없어지는 스무스한(?) 그림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독일 생활 불변의 법칙은 이번에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언제나 내 마음이 '평온해질 것 같은' 시기가 오면 이놈은 갑자기 찾아와 이렇게 묻는다. 


"이런 것도 처리할 수 있어? 그럼 어디 한  번 해봐."




은행계좌의 폐지신청 버튼을 누르자마자 알림이 떴다. 


'계좌가 성공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앱에 로그인할 수 없었다. 독일에서 정말 보기 드문 속전속결 실시간 처리가 된 것이다. (독일은행이 아니고 해외은행이라 그랬던 것 같다)


아뿔싸. 그럼 내 환불 건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 쇼핑몰에 연락해서 다른 계좌로 달라고 하자.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나는 곧바로 밤늦게 쇼핑몰 핫라인에 메일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날, '그렇게 해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쇼핑몰의 답변을 받고 약 1주일 뒤 환불이 완료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그리고 메일에는 폐지된 계좌번호가 적혀있었다. 이전 요청과 다르다고 항의하자, 자기들은 그렇게 해줄 규정이 없다고 한다. 


그럼 진작 말하지, 왜 이제 와서?


방금 위에서 독일생활 불변의 법칙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독일 관청 직원의 말은 항상 믿도록 하자. 실제로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변동될 있는 게 독일 직원들의 안내다. 1n년 간 발등을 찍히다 못해 피가 나고 흉터가 남았는데 또 찍히는구나. (외국인청조차도 비자발급 조건을 틀리게 안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독일 직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게 실수였다.


결국 나는 조각처럼 남아있는 폐지된 계좌의 정보를 모아 해외은행에 연락해야 했다. 상황을 처음부터 다 설명하고, 본인임을 증명하느라 메일을 여러 개 써야 했지만 다행히 일처리 속도가 독일과 비교도 안되게 빠르고 친절하여 기분이 많이 풀어졌다. 


연락을 취한 지 정확히 열흘 뒤, 환불받을 금액이 정확하고 안전하게 다른 계좌로 들어왔다. 따뜻하고 빠르고 정확한 처리과정을 경험하며 폐지한 계좌를 다시 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라 말 한마디, 무심결에 나온 친절한 태도인 것 같다. 독일은 이 사실을 언제 알려나 모르겠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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