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져 여름만큼 시즌은 아니지만 여전히 여행객들이 문전성시인 곳이 있다. 바로 그리스 산토리니.
올해 여름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한 우리는 남들 다 휴가 갔다 온 시기이자 독일에서 제일 못난 날씨가 시작되는 11월에 산토리니 휴가 계획을 잡았다. 아이가 없는 가정이라면 독일은 휴가시즌에 상관없이 본인이 가고 싶은 시기에 (대체업무만 가능하면) 휴가를 낼 수 있기 때문에 11월, 2월 같은 비시즌을 틈타 떠날 수 있다.
야심 차게 여행계획을 짜기 전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부분, 날씨다. 여름도 겨울도 아닌 애매한 기간이었기에 우리는 여러 블로그를 뒤져서 비슷한 시기에 산토리니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꼼꼼히 읽었다.
"낮에는 반팔 입을 정도로 더워요. 저녁에는 얇은 카디건 하나면 됩니다."
블로그 여러 개를 봤으나 다들 같은 말이었다. 게다가 애플이 알려주는 날씨는 무려 17-19도에 달했다.
‘봄 날씨잖아? 정말 가디건 하나면 되겠는걸? ’
그렇게 우리는 얇은 옷 몇 벌과 봄자켓을 챙겼고, 독일 날씨가 춥기에 출발하는 날 경량패딩을 하나 걸쳤다. 도착하면 곧 패딩이 필요 없을 텐데 굳이 짐을 만드는 것 같았다.
독일에서 산토리니 직항은 없다. 아테네로 가서 한 번 환승해야 한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것처럼 아테네에서 산토리니까지도 약 40분이 걸린다. 우리가 산토리니에 도착한 시각 저녁 6시.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버스를 타러 공항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과 공기가 얼굴과 머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아 이거 날씨가 보통이 아닌데? 큰일 났다.'
포카리스웨트의 청량함을 떠올리며 생에 처음 마주한 산토리니는 춥고, 어둡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가디건 하나면 된다며?'
함께 도착한 다른 유럽인들을 보니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패딩에, 털모자에, 심지어 장갑을 준비한 사람도 있었다. 절대, 절대로 가디건 하나로 버틸만한 날씨가 아니었다. 우리는 얇은 패딩과 자켓을 손으로 꾹 붙들며 추위를 겨우 이겨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날 하루를 지내보니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산토리니의 11월은 하루에도 3개의 날씨가 있다는 걸.
동트기 전 아침과 저녁 7시 이후는 전형적인 늦가을과 초겨울의 날씨였다. 다운 경량패딩, 혹은 목도리가 필요한 추위였다. 해가 중천에 뜨는 낮에는 완연한 봄 그 자체였다. 얇은 긴팔 티셔츠 하나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시간은 잠깐일 뿐, 오후 4시 이후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역시 티셔츠 하나는 역부족인 날씨가 되었다.
결국 티셔츠부터 패딩에 스카프까지 모두 필요한 날씨였다. 가디건 하나로 절대 안 된다.
이러한 실수를 피하려면 주관적인 '남들의 후기'가 아니라 철저히 데이터에, 그것도 '체감온도'에 근거해서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 점을 간과한 것이다. 타인의 후기가 분명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사람마다 체질, 느낌이 모두 다르기에 그것만 믿으면 오판단을 하기 십상이다.
이전 융프라우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바람막이 하나'면 된대서 진짜로 바람막이만 입고 갔다가 온몸이 동상 직전까지 가는 추위를 경험했다. 근데 이번에 또 비슷한 유형의 후기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타인의 후기는 참고하되, 데이터를 믿고 준비하자.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