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Nov 19. 2024

아이패드를 샀더니 아이만 왔다

약 11월 20일경부터 독일은 블랙프라이데이(블프) 주간이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문화지만 독일도 크리스마스가 연중 가장 큰 명절이기에 이 행사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독일 아마존의 덩치가 점점 커지면서 다른 쇼핑몰들도 덩달아 블프를 시행하고 있다.


아무리 독일 택배가 개선되고 있다 해도 여전히 아마존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드물기에, 아마존의 독일 진출과 성공은 사실상 이미 잡아놓은 물고기나 다름없었다.


로켓배송이 있는 한국에선 아마존이 감히 대적할 수 없지만 느릿느릿 배송이 기본에, 귀찮으면 집에도 안 들르는 택배사가 판치는 독일에서 아마존은 그저 빛이다. 자체적으로 배송기사를 고용하여 고지한 배송일을 칼같이 지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종종 독일어를 전혀 못하거나 신상이 의심되는 배송기사가 오기도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은 없었다.




올해 블프기간을 맞아 나는 아이패드를 바꾸기로 했다. 나이가 들었는지 기존에 쓰던 패드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져 손목이 아파왔고, 무엇보다 그 정도의 고스펙 기기는 과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쓰던 기기를 독일에서 당근 하고(덕분에 세상엔 별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또 깨달았다) 새 기기를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약속한 배송날짜에 맞춰 택배가 배송되었다. 최근 애플기기는 패키징이 계속 얇아지면서 택배만 보면 이게 패드인지 노트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졌기에 별 의심 없이 택배를 가져왔다. 그리고 집에서 박스를 뜯는 순간, 아뿔싸.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이패드가 있어야 할 택배 상자엔 처음 보는 책 한 권이 덩그러니 담겨있었다. 기대한 아이패드는 온데간데없고 <까마귀 리누스와 함께하는 나의 유치원 노트>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이 있었다.


아이패드니까 '아이가 쓰는' 패드를 보낸 건가? 이런 장난을 유럽인이 했을 리는 없고, 패키징 한 직원이 혹시 한국어 X맨? 별 시답지 않은 상상력이 샘솟았다.


종종 한국에서도 노트북을 시켰는데 벽돌이 왔다느니, 핸드폰을 시켰는데 사탕이 왔다느니 하는 분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가 당해보니 정말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패키징에 배터리 표시도 없는 걸 보니 송장이 바뀐 게 분명했다. 이 책도 누군가가 주문했으니 패키징 했을 텐데, 그럼 책을 받아야 할 고객은 아이패드를 받은 것이란 말인가!




분노를 가라앉히고 아마존 고객센터에 연결했다. 아마존은 영어 직원과 독일 직원의 응대 온도가 은근히 다르다. 영어 서비스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친절하고 대답이 빠른 반면, 독일어 서비스 직원들은 대답이 퉁명스럽고 느리다(모두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게다가 이날 나에게 배정된 직원은 유독 더했다.


교환서비스가 없는 독일답게 역시나 그는 '환불하고 다시 주문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외에는 고객 응대 리스트에 있는 말을 복사 붙여 넣기 할 뿐이었다. 환불에 시간이 걸리므로 기다리고 싶지 않다, 물건을 돌려보낼 테니 제대로 보내달라고 하자 아무 대답이 없었다.


독일에서 그나마 친절하다고 느낀 아마존 고객센터인데 이제 그들도 슬슬 타성에 젖어가나 보다. 2024년, 독일의 서비스는 십 수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개선점이 참 많다.


제목 및 본문 사진: 직접촬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