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Nov 25. 2024

같은 한국인이면 그래도 됩니까?

좀 지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이제는 말할 수 있고, 이렇게 글로 남길 수도 있다.


나는 해외에서 한국인을 특히 조심하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다. 장소와 국적을 불문하고 낯선 사람은 다 조심해야 한다. 서로 최소한의 선은 지키며,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선 특히 신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0년이 넘는 긴 독일살이 동안 두 번 '한국인'에게 크게 데인 일이 있었다. 독일살이 초반이라 같은 한국인에게 정이 가서 받은 배신감의 크기가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




# 내 집은 내 집, 니 집도 내 집

독일에 막 유학을 왔던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대도시에선 방을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날까지 방은커녕 기숙사도 무한대기 상태였다. 결국 잠시 고향에 간 중국 유학생의 방에 두 달을 살게 되었다. 다음 집을 열심히 구하던 어느 날, 마침 한국 유학생 하나가 내가 방을 빼는 기간쯤에 이사를 나가니 다음 세입자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나는 그 학생에게 컨택했고, 집을 본 뒤 그녀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런데 이사 갈 날이 다가와도 그 학생은 이사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정이 있다며 '며칠만' 자기랑 같이 살자고 했다. 처음엔 1주일이면 된다더니 연락을 할 때마다 1개월, 2개월로 늘어났다. 사실 그녀의 진짜 목적은 월세나누기였다. 본인은 계속 그 집의 '제 1세입자'인 상태를 유지한 채 룸메를 구해서 월세를 나눠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제 2세입자로 들어올 사람에겐 자신이 작성한 계약서를 들이밀어 마치 조금만 기다리면 제1 세입자로 변경해 줄 것처럼 꾀어냈다.


사실 본인은 이사 나갈 계획이 전혀 없으면서 한 달만, 두 달만 하며 여태까지 그녀의 말을 믿은 누군가와 계속 같이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계약서를 쓰자마자, 빨리 방 빼고 나를 제 1세입자로 바꿔놓으라고 하니 본인 계획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모양이었다. 결국 그녀는 나한테 온갖 욕설, 짜증과 분노를 표출했다. 요즘 같았으면 삽시간에 유학생 및 교민 사회에 알려졌겠지만, 당시엔 그런 루트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마음만 상한 채 다시 집 없는 유학생 신세가 되었다.




# 15시간 근무에 3만 원

지인의 부탁으로 한국에서 어느 한독커플의 상견례를 통역해 준 적이 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그 커플은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는데 마침 나도 그 시기에 우연히 독일에 있었다. 커플 중 한국분(성별은 언급하지 않겠다)에게 식 3주 전쯤 전화가 왔다. "나 결혼하는 거 알지? 어차피 결혼선물 줄거지? 그 대신 통역해 줄 수 있어?"라고 물었다. 당시 나는 독일경험도 짧은 데다 졸업도 안 한 학부생이었고 남의 일생일대 행사에 끼어들기 싫었다. 무엇보다 그 결혼식에 참석할 마음이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물을 줄지 말지 상대방이 언급한 것도 참 어이가 없다. 아무튼 나는 결혼전문 통역을 쓰라며 거절했으나, 그분은 계속해서 사정하며 "사회자가 대본을 줄 테니 그것만 통역하면 된다. 다른 건 안해도 좋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며칠 뒤 대본을 받자마자 나는 약 2주간 밤잠을 설쳐가며 통역을 준비했다.


하지만 식은 약속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다. 사회자는 대본과 다른 온갖 사족을 붙이고 통역할 틈도 주지 않아서 초보 통역사인 내가 일부러 중간에 말을 끊어야 했다. 게다가 식 전후로 한국분 가족들의 모든 통역을 도맡아야 했다. 본식이 끝나고 식사, 식사가 끝나고 파티까지, 아침 7시경 시작한 통역은 밤 10시가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사진알바로 온 한국분도 약속과 다르게 너무 오래 있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10시가 넘어서야 그 한국분은 우리 두 사람한테 20유로를 쥐어주며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했다. 앞도 안 보이는 시골에서 기차역까지 택시를 타고, 다시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집에 오니 밤 12시가 넘었다. 나는 그날 15시간 근무를 하고 10유로, 약 15000원을 받은 셈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식사를 대접하겠다던 그분은 나를 카페로 불렀고, 커피 한 잔을 시켜주며 나에게 되려 화를 냈다. 내가 사회자 말을 다 통역하지 않아서 부모님이 굉장히 화가 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전문 통역사가 되려면 새겨들어라"는 묻지 않은 조언을 가장한 비난까지 덧붙였다.


한 번이라도 통번역을 해본 분들은 아실 거다. 외국어 유머나 시시콜콜한 얘기는 통역을 해봐야 의미도, 재미도 없다. 만약 텍스트 번역이었다면 시간을 들여 한국유머와 비슷한 것을 찾아낼 수도 있겠으나, 바이링구얼도 아니고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외국어를 현장에서 노련하게 유머까지 덧붙여 통역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결혼 전문 베테랑 통역사를 쓰라고 하지 않았나. 돈은 주기 싫고 통역은 필요하니 자기보다 한참 어린 학생의 노동력을 있는 대로 착취해 놓고 클레임을 하는 뻔뻔함이 아주 대단했다. 게다가 나는 전문 통역사가 꿈이라고 한 적도 없는데 묻지도 않은 인생조언까지, 어느 하나 그 사람과 인연을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15시간 무료봉사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나는 그 뒤로 몸살을 앓았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해서 한동안 새로운 사람 만나기가 무서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주변사람들한테도 친분 운운하며 돈 안 주고 노동력을 착취하기로 이미 유명했다. 사회자의 대본에 쓰여있던 본인의 러브스토리도 사실 다 거짓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지금도 결코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백 번의 깨달음과 천 번의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순진한 유학생들과 교민들을 등쳐먹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구독자 분들은 독일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부터 떠나는 날까지 절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남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법을 교묘히 피해 가려는 사람은 국적불문 상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