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회사나 관청 혹은 기관의 행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가 참 많다. 예를 들어, 수년 전 근로비자를 받을 때 나는 두 달을 기다리고-> 거절되고-> 재신청하고-> 다시 한 달 반을 기다렸던 것과 달리, 남편은 당일에 2년짜리 비자를 받아왔다. 남편의 직군과 월급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시겠지만 실제로 남편과 같은 조건으로 신청한 지인은 나처럼 매우 오래 기다려야만 했다.
이래서 독일에 오려면 명심해야 할 말이 있다. 다른 글에서도 자주 언급했던 '케바케 사바사 담바담 관바관' (케이스바이케이스 사람바이사람 담당자바이담당자 관청바이관청). 이것저것 붙이면 독일 어디든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케바케를 또다시 오랜만에 겪은 일이 발생했다.
남편과 나는 각자 출퇴근을 하기에 차량을 두 대 쓰고 있는데, 집을 구매할 때 주차장을 하나밖에 사지 못했다. 건축사에서 가구 당 주차장 1개, 꼭대기층 가구만 2개까지 구매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차 한 대는 여기저기 세우거나 다른 집 주차장을 임대하여 쓰곤 했다. 그러다 주차장 주인이 차를 샀다며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우리는 급히 새 주차장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독일에서 주차장만 필요한 경우 크게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 야외 노상주차를 한다. (주차금지구역 피하기)
2. 공용/마트 주차장 무료주차시간을 이용한다. (주로 밤 10시-익일 오전 8시만 가능)
3. 개인 주차장을 빌린다. (개인 간이라도 계약서 작성 필수)
4. 공공 주차장을 빌린다. (공급자 찾아서 컨택해야 함)
2번은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1번은 차 보험료가 오르고, 3번은 자리가 없었기에 우리는 4번을 택했다. 독일 어느 도시든 Baugenossenschaft(건축협동조합) 혹은 Wohnungsgenossenschaft(거주협동조합)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공급하는 집이나 주차장은 구조와 퀄리티가 비슷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유학시절 기숙사를 나와 시내에 구했던 집도 그 도시의 거주협동조합에서 공급한 집이었다. 주로 독거노인이나 1인가구가 많고 위치대비 가격이 저렴한 게 큰 장점이다 (물론 큰 집들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동네의 협동조합을 찾았고, 그들이 임대하는 주차장에 '지원'했다.
다른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집이든 주차장이든 뭐든 장기임대를 하려면 Bewerbung(지원) 절차를 거쳐야 하고 여기엔 석 달 치 월급명세서, 개인정보, 신분증 등을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 단 돈 10유로짜리 공간이라도 마찬가지다.
약 1주일 뒤, 우리는 "주차장에 불합격"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오랜만에 독일서 집을 구하고 수 백번 떨어졌던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100유로도 안 되는 주차장 임대에 어째서 불합격이지? 지금보다 적은 월급으로 천 유로가 넘는 집도 붙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과 이유를 쥐어 짜내봐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게다가 광고도 내려가지도 않은 걸로 보아 주차장이 아직 비어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같은 서류로, 같은 주차장에 지원했다.
그리고 약 사흘 뒤, 주차장에 합격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
이 상황을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토씨하나 안 빼고 똑같이 지원한 건데 처음엔 똑 떨어뜨리더니 두 번째는 붙었다. 혹시 그들의 기준이 지원자의 인내심이었나..?
그렇게 우리는 성공적으로 주차장 임대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사람의 감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이전에 열심히 집을 구할 때는 같은 집에 두 번 지원할 생각이 전혀 안 들었는데 왠지 이번에는 포기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들에게 기준을 물어봐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손이 미끄러져 불합격 버튼을 클릭했을 수도 있고, 매번 전화할 때마다 응답하는 사람이 다르고 자리를 비우는 걸로 보아 제대로 체계가 잡히지 않은 사무실임이 분명했다. 이런 곳은 안 되는 소통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내 입장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또 이렇게 '이해 안 되는 독일 시스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