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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도 혀를 내둘렀다

by 가을밤

지난 스토리에 적었던 사기고소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한 범죄사건이었다면, 시시비비를 치열하게 가리고 있는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소송건이 있다. 내가 원고, 상대는 피고. 작년 초부터 시작하여 약 1년 반 가량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살았던 월셋집 관리회사가 보증금, 관리비 및 기물교체와 관련하여 부당이득을 취하고 일방적으로 보증금을 지급하지 않은 게 발단이었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토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s://brunch.co.kr/@nomad-lee-in-eu/208



분쟁의 첫 지점이었던 난방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겨울에 거의 난방을 하지 않는다. 내가 십수 년 전 독일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7개 도시 10개 넘는 집에 살면서 집이 춥든 따뜻하든 항상 같은 생활패턴을 유지하고 있고, 결혼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완공된 지 2년도 안되었던 신축 아파트인 그 집에 살았던 기간에만 총 340만원의 추가 난방비(관리비중 난방비가 제일 높았다)가 나왔다. 그들의 청구가 부당하다는 걸 200% 확신하게 된 계기는, 이 집보다 10년 이상 오래되었던 다음 월세집에서는 심지어 난방비를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관리회사는 추가 난방비를 명목으로 보증금을 우리와 상의도 없이 이사 후 1년 이상 묶어두었으며, 석회제거를 4차례 이상 해놓은 멀쩡한 주방과 샤워실에 석회 흔적이 남았다는 트집을 잡아 우리 돈으로 교체를 강행했다. 정상적인 관리회사였다면 안 들었을 돈이 무려 한화로 540만원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상 없는 월셋집에 주인이 일방적으로 540만원의 추가청구를 하고 보증금을 미지급했다면 어땠을까? 개인 간 소송이 적은 우리나라에서도 이건 소송감이라 생각한다.




변호사와 상담을 하고 소송을 준비하면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졌다. 안타깝지만 2020년, 2021년에 부당청구한 난방비는 이미 법적 분쟁기간이 지나 소송대상이 될 수 없었다. 우리 변호사는 이 쟁점의 포인트를 [보증금(2022년 난방비 명목으로 안 준 돈)+기물교체]로 잡았다.


먼저, 관리 회사에게 관리비 고지를 제때에 안 한 점에 관한 책임을 묻고(원래 고지기간이 늦어지면 얼마가 되든 법적으로 세입자에게 추가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런데 그 관리회사는 마음대로 우리 보증금에서 돈을 빼버린 것이다), 기물교체 시 정당한 근거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양측의 의견대립은 팽팽했고, 증거가 될 만한 자료들이 수차례 오갔다. 그리고 얼마 전, 실제 법정 재판이 열렸다. 우리 변호인이 출석했기에 당사자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고, 재판 후 며칠 뒤, 변호사의 편지를 전달받았다. 편지를 본 우리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변호사의 편지에는 "재판장이 증거 확인을 놓쳤다"는 내용과 함께, "이 도시 법원의 수준을 보여준다"라는 자조적인 멘트가 있었다. 즉, 우리 변호사가 빠지지 않고 모아서 제출한 증거 및 상대편의 대응 현황을 판사가 보지 않고 미뤄뒀다가 재판 당일이 돼서야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보아하니, 이 법원에서 증거를 놓치거나 일처리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독일이 대체 어딜 봐서 철두철미하고 정확한가? 나는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독일을 미디어나 광고로만 보고 배운 사람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정황상 사건은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상대편이 충분한 근거를 내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종 판결이 나와야 알겠지만 법정 소송을 하면서까지 독일 특유의 케바케의 법칙이 적용됐다. 법원by법원, 판사by판사. 이번에도 영락없이 독일이 독일 했다.


제목 사진출처: 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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