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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Jan 16. 2024

두 번째 소송을 준비하다

독일에서 벌써 두 번째

독일에 살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보험 리스트가 있다. 의료보험, 치아보험, 손해보험, 자동차보험(차주라면), 집보험 - 여기에 더하여 변호사 보험이 포함된다. 살면서 변호사를 찾아가고 소송 걸 일이 얼마나 되겠냐 싶겠지만, 독일에서는 일이 터지면 인정(人情)에 기대어 해결하기보단 법대로 하는 게 철칙이다. 그래서 변호사 상담을 받거나 소송하는 경우를 상당히 흔히 볼 수 있다. 독일생활 좀 해봤다는 분들은 모두 변호사 보험을 갖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이며 2024년 새해 1분기 현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독일에서만 두 번째 소송이다. 첫 번째는 사기피해였고, 이번에는 보증금 미지급 피해 건이다. 크게 보면 둘 다 사기의 연장선이니 결이 비슷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사건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상할 때마다 단전부터 열이 올라오는데, 이번 사건은 뒷목에서부터 뒤통수까지 저릿해오는 느낌이다. 


이전 스토리에서 한차례 독일 월세집의 보증금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 독일 월셋집의 보증금은 3개월치 찬월세(난방비와 관리비를 제외한 월세)다. 월세가 1000유로(140만 원)가 넘는다 해도 보증금은 300만 원 남짓이니, 한국에 비하면 굉장히 부담 없는 금액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액수가 적다고 스트레스까지 적은 건 아니다. 이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잘못 걸리면 월세 들어오기 한참 전에 있던 집의 하자부터 뒤집어쓰고 보증금을 푼도 돌려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독일에선 이사 들어오는 집안 구석구석 사진 수백 장을 찍어둬야 한다. 


독일생활에 도가 튼 나도 여태 못 받은 보증금이 있다. 독일에서 이사 9번 하며 그동안 십, 백유로 정도는 눈감고 넘겼지만 이번엔 그러면 액수라 소송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집 뺀 지 2년이 다 돼가는데, 보증금 380만 원 여태 돌려받은 고작 150만 원이다. 관리회사에서 80만 원은 아무 이상도 없던 주방 싱크대를 교체하고 화장실 타일의 석회를 제거하겠다며 가져갔다(이마저 계산이 틀렸으나 수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150만 원은 '예상되는 2022년 초과 난방/관리비' 명목으로 세입자인 우리와 마디 상의 없이 자기들 계좌에 묶어두고 현재까지 미지급 상태이다.

    



분쟁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독일의 모든 관리비, 난방비는 '다음 해'에 정산된다. 즉, 2022년 난방비를 정액제로 냈다가 2023년 9월이 돼서야 내가 진짜 얼마나 썼는지 알 수 있다는 소리다. 덜 썼으면 돌려받고, 더 썼으면 Nachzahlung(추가지불)을 하게 된다. 


첫째, 그들은 이미 초과 난방비 및 관리비 인상 명목으로 우리에게 2년 동안 각 90만 원(2020년 추가지불), 250만 원(2021년 추가지불), 총 340만 원을 가져갔다. 이건 보증금이랑 별도로 계좌이체했다. 회상해 보면 2021년에 엘리베이터는 몇 달씩 고장 나있고, 계단이나 쓰레기통 청소도 잘 안 되는 엉망 그 자체였는데 영수증을 보니 관리비가 천정부지로 올라 있었다. 또한 그 해 우리는 집에서 난방을 거의 하지 않고 다운점퍼를 입고 지냈다. 하루 5분 샤워하는 게 난방의 전부였는데, 그 대가로 250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둘째, 우리는 2022년 한여름에 그 집을 나왔기에 그 해에는 정말 난방을 단 하루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22년 추가지불 금액이 140만 원이란다. 도대체 어떤 계산법을 썼기에 난방비를 이미 받아 가고도 140만 원을 더 청구할 수 있는가? 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메일에 3주째 답장을 하지 않고 있다. 


즉 우리는 여태 보증금 350만 원, 추가지불 340만 원 총 690만 원을 냈고, 150만 원 돌려받은 게 전부다. 그들의 근거없는 셈법에 의하면 여기서 우리가 더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0만 원 남짓이다. 


독일 난방비 비싼 건 워낙 유명한지라 일부러 점퍼 껴입고 살았는데 돌아오는 건 540만 원의 마이너스가 난 통장뿐이라니. 웬만하면 지나가는데 이번 뒤통수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변호사 상담을 하면 보통 두세 번의 상담 끝에 소송여부를 결정하고 변호사는 다음 절차를 밟게 된다. 우리는 고민 없이 소송을 진행할 것이고, 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다. 


잔잔하고 고요한 독일 생활에서 돌을 던지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이런 일들이다. 결코 가볍지 않고,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오늘도 지친 하루가 지나고 있다. 


그 집에 살 때, 우연히 마주친 이웃 분의 말씀이 기억난다. 

"여기 보증금 돌려받으려면 법정까지 가야 돼. 하루라도 빨리 도망쳐."


우리도 그때 도망쳐야 했다.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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