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으로 갔던 독일에서 알게 된 독일인 친구가 있다. 건실하고 순수하고 밝았던 그 친구는 처음 만난 당시에도 자신의 꿈 말하기를 참 좋아했다.
나는 세계 각국 사람들 누구나 올 수 있는 호스텔을 열거야.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교성 좋고 호기심 많은 친구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너무 막연해 보였다. 호텔에 취직한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호스텔을, 그것도 규모가 있는 호스텔을 연다는 건 생전 처음 해외에 나온 내 눈에는 그저 뜬구름 잡는 상상으로 들렸다.
그리고 정확히 3년 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장차 자신의 호스텔이 될 건물을 마련했다. 정확히 말하면 절친한 친구와 동업을 결심하고, 양가 부모님들의 투자를 받아 라이프치히에 있는 4층짜리 폐건물을 매입한 것이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독일 구동독 지역엔 폐건물이 정말 많았다. 통독 이후 인구가 빠져나가 더 이상 쓰지 않지만 철거도 재건축도 할 수 없어서 그냥 방치해 둔 회색 건물들. 시내 중심 외곽 할 것 없이 곳곳에서 낮엔 도시 미관을 해치고 밤엔 담력체험하기 딱 좋은 흉물 골칫덩이였다.
하지만 친구는 자신의 인생을 건 꿈을 100년도 더 된 그 흉물에 투자했다.
건물매입 후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친구와 절친 두 사람은 돈을 아끼고자 남의 손을 거의 빌리지 않고 직접 시공을 원칙으로 했다. 문화재보존법에 걸린 건물이라 건물 외벽을 손대지 않고 오직 내관 수리로만 승부를 봐야 했다.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워낙 오래 손을 안 탄 건물이라 곳곳이 먼지와 폐기물 투성이었다. 벽을 뜯고, 바닥을 갈고 매일 먼지 구덩이 속에서 공사를 이어나갔다. “오늘은 벽지를 갈았다”며 한껏 더러워진 옷을 입고도 씩 웃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빛나던 친구의 미소를 보며 나는 호스텔의 성공여부를 더 이상 의심치 않았다.
(호스텔 소개 중)
번역: 변화가 많던 역사로 인해 2014년 라이프치히에는 많은 집들이 비어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바가 있는 호스텔로 바꾸겠다는 아이디어가 우리를 사로잡았습니다. 학업을 거의 해내지 못했지만 당시 우리는 오래된 것으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우리에겐 100년이 넘은 건물의 특성을 보존하는 것이 특히 중요했습니다.
공사를 시작한 지 꼬박 4년째, “멀티컬처”를 테마로 하는 호스텔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친구의 꿈이 실현된 순간이다.
호스텔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국적과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환영하며 1층에는 직접 바를 운영 중이다. 구글 평점도 꽤 훌륭하다.
무모해 보였던 한 청년의 꿈이 실현되며 커다란 폐가가 있던 어두웠던 거리마저 함께 환해졌다. 유동인구가 늘며 자연스레 분위기가 변한 것이다.
내 눈에는 흉물이었는데, 어째서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그 친구의 눈에는 꿈을 펼칠 도화지였을까. 강력한 소망, 이루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실천이 완벽히 컬래버레이션 되었던 것 같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호스텔에 들러 친구에게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르겠다. 진심으로 나는 여전히 그가 자랑스럽다. 다음에 라이프치히에 들르면 꼭 친구의 호스텔에서 묵을 생각이다.
제목 사진 출처: pixabay
본문 사진 출처: multitude.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