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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Jan 11. 2024

생각은 자유롭(지 않)다

Die Gedanken sind (nicht) frei


독일의 오래된 민중가요 중 <Die Gedanken sind frei 생각은 자유로워>라는 곡이 있다. 


원본 가사는 1800년 이전에 쓰였으며, 지금까지 약 두 번의 개사를 거쳐 현재 널리 알려진 가사는 1900년대 이후에 쓰였다. 노래의 1절과 2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사와 멜로디가 좋아 가끔 듣는다.


Die Gedanken sind frei, 생각은 자유로워,

wer kann sie erraten, 누가 그것을 추측할 수 있겠어,

sie fliehen vorbei 그들(생각)은 스쳐 달아나지

wie nächtliche Schatten. 밤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Kein Mensch kann sie wissen, 그 누구도 그들을 알 수 없어,

kein Jäger erschießen, 어떤 사냥꾼도 쏘지 못하지,

es bleibet dabei: 이것은 유지되지:

die Gedanken sind frei. 생각은 자유로워.


Ich denke, was ich will,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und was mich beglücket,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doch alles in der Still, 그러나 모두 고요 속에 있지,

und wie es sich schicket. 그것이 순응하는대로.

Mein Wunsch und Begehren 나의 소망과 욕구

kann niemand verwehren,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es bleibet dabei: 이것은 유지되지:

die Gedanken sind frei. 생각은 자유로워.


... (이후 3, 4절 계속)




독일 살면서 이 노래에 공감하는 일도 있지만, 반대로 지독하게 공감할 수 없던 사건들도 있다. 그리고 최근 '노래에 공감할 수 없는' 사건 하나가 또 추가되었다. 


가끔 잊을만하면 인터넷이나 앱에 남겼던 평점을 수정해 달라, 지워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언뜻 보기에 남얘기나 평가에 무딘 것 같이 보이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특히 자영업은 자기 장사인지라, 은근히 평점에 예민하고 때로는 과도하게 반응하는 업주들이 많다. 


거짓 및 악의적 평점은 업주 요청 시 플랫폼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할 수 있다. 그러나 서술 내용이 구체적이고 거짓으로 보이지 않는 평점은 작성된 내용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떤 근거로 작성했는지 고객의 의견을 들은 후 삭제여부를 결정한다. 구글이 대표적으로 그러하고, 아마존의 경우 자체적으로 평판을 검토하는 기준이 있다. 


이번 사건은 구글처럼 규모가 큰 곳이 아니라 어느 앱에서 내가 준 별점 때문이었다. 

설치/조립/건축과 관련된 전문기사를 찾아주는 앱이 있다. 한 달 전쯤 나와 이웃집에 무엇을 설치할 일이 생겨 앱을 통해 견적을 요청하게 되었고, 한 업체에서 괜찮은 견적을 주어 진행하겠다고 했다. 


견적도 맘에 들고 업주도 '별점 5개 평점'을 요구하길래, 고민 없이 별 5개를 남겼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업체는 견적이 잘못되었다며 일방적으로 가격인상을 했다. 내가 '첫 견적에 따르기로 했는데 말이 바뀌는 게 이해가 안된다'라고 하자, 나보고 원하면 고소해도 좋고, 앱 별점을 깎아도 좋다며 반 위협적으로 사과를 하였다. 독일인들 입에서 듣기 힘든 그 말 - Entschuldigung(엔츌디궁: 실례합니다 말고 사과의 의미 '죄송합니다'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뜻이기에 웬만해선 하지 않는다) - 을 연달아하며  '네 번이나 사과했는데 이제 좀 받아주면 안 되냐'는 말을 덧붙였다. 인턴이라 실수했다며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 

두 번째 견적은 제대로 달라고 했고 그 직원도 다음 견적은 절대로 변경될 일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새 견적으로 우리와 이웃의 일정, 예산을 모두 픽스해 두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해당 직원은 와츠앱(서양 카톡)으로 '인력이 없어서 못하겠네요. 견적 취소합니다'라는 메시지만 하나 달랑 보내왔다.  다시 모든 일정이 틀어진 나는 열이 받을 대로 받았고, 앱에 적었던 별점을 5점에서 1점으로 수정하고 자세한 사건정황을 함께 서술했다.




그리고 3주가 지난 어느 날, 새벽에 그 직원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당신 평점 때문에 내가 일자리를 잃게 생겼고 상사가 엄청 화를 냈으니 지워달라. 내 실수지 회사 잘못이 아니다'는 문자였다. 약 3시간 정도 답을 하지 않자 '돈 주면 지워주겠냐'는 문자가 추가로 왔다. 평소 문자는 그렇게 잘 씹는 사람들이, 자기 급할 때만 난리다.


업체의 반복된 실수에 고객은 강제로 두 번이나 일정 및 예산을 변경해야 했고, 이제는 평점 삭제강요를 받고 있다. 고객한테 직접 돈 받고 일하는 업체면서 도대체 고객이 얼마나 어디까지 업체의 실수를 이해하고 감수해줘야 하는가? 


나는 그 직원에게 '돈은 필요 없다'라고 짧게 답하고 업체 사장에게 직접 메일을 썼다. 

직원을 자르든 혼내든 당신 사정이지만, 명백히 업체의 실수였고 내 평점엔 거짓정보가 없다는 것, 그리고 고객은 피드백을 남길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고객입장에서는 인턴이든 사장이든 상관없이 누가 연락을 취하든 담당자가 곧 그 회사의 대표이자 얼굴이나 마찬가지라고. 




독일에 살면서 평점 소명을 몇 차례 해봤던지라, 나는 평점 작성 시 항상 사실에 기반하여 감정적 인격적 항의 없이 오직 고객경험에 근거해서만 쓰려고 한다. 올리기 전 몇 번이고 검토를 거치고 증빙을 갖고 있기에, 언제든 소명이나 반박 메일이 와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다. 타당한 비판조차 못 받아들일 거면 고객평점 기능은 왜 만들어 놓았는가? 


이럴 때면 Die Gedanken sind frei 가사에 진심으로 nicht를 추가하고 싶다.  

Die Gedanken sind NICHT frei(생각은 자유롭지 않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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