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uerprotest
평소 한 대도 보기 힘든 트랙터, 어쩌다 도로에서 마주치면 느려터진 속도 탓에 뒤차들이 연이어 중앙선을 침범해서 추월해 가는 그 트랙터 수 천대가 월요일 아침 4시 댓바람부터 아우토반(고속도로)에 나왔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변에는 심지어 똥을 산처럼 쌓아 도로를 막은 곳도 있었다.
2024년 독일판 농민항쟁의 모습이다.
챗GPT니, AI 딥러닝이니 하는 시대에 트랙터와 오물로 시위를 하다니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 2024년 현실이 맞나 싶었다.
새벽부터 트랙터를 끌고 도로로 나온 사람들은 농부들 혹은 농업 관련 종사자들이다. 독일 연방정부의 보조금 삭감결정에 항의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형 시위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농업용 디젤 자동차에 대한 보조금을 점차 줄이고, 농사용 차량 면세 제도 역시 폐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의 압박 때문에 결국 면세폐지는 보류되었다. 연방헌법 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연방정부는 어떻게든 9억 유로(약 1조 3천억 원)를 절약해야 하는데, 결국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만약 연방정부의 계획대로 농민들의 보조금이 사라지면 생산 단가가 높아지고 결국 시장에서 상품가격이 오를 건 불보듯 뻔하며,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거슬러 올라가면 질소계 비료 사용을 줄이자는 유럽의 탄소정책까지 가는데, 그 대단한 친환경 정책 때문에 식량난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수준까지 온 것 같다. 나는 농민도, 화학 전문가도 아니지만 질소계 비료는 농업에 있어서 엄청난 생산량 증가, 즉 전 세계 농산물 수확량과 가격경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질소계 비료사용을 제한하면 식량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아무튼 이 문제도 여전히 진행중인 상태에서 보조금 삭감이라니. 농민들의 숨이 막힐법도 하다.
파업이란 파업은 독일 살면서 지긋지긋하게 보는데 이번 농민항쟁이 주는 느낌과 무게는 독일철도나 기업 노조의 파업과는 사뭇 달랐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코로나 기금 운용 위헌 판결(코로나 대응용으로 잡아놓고 올해까지 쓰려고 했던 예산을 쓰지 못하게 됨)을 내린 결과로, 이지경까지 온 사태를 보고 있자니 독일이 진짜 어지간히도 어려운 것 같다. 2021년에 천정부지로 솟은 난방비, 지금까지도 꾸준히 오르고 있는 물가, 외식비 10% 이상 상승, 아파트 관리비도 단번에 30% 이상 오르는 것까지. 농담이 아니라 월급 빼고 전부 다 일제히 올랐으며, 어디 하나 숨 쉴 틈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생활비의 칼날이 더 날카로워져 위협하는 느낌이다. 나를 포함, 월급받아 생활하는 직장인은 그저 숨이 막힌다.
게다가 아이가 있다면 응당 받는 것으로 생각해온 킨더겔트(양육수당)의 지급 기준도 조정될 예정이라, 앞으로 수 만 가구 이상이 양육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다. '독일'하면 아이 키우기 좋고, 슈퍼마켓 물가 싸고,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굳건한 맏언니 같은 이미지였는데, 이대로라면 독일의 명성은 곧 먼지 쌓인 트로피 같은 지나간 과거의 명예로 남을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Ina Fassbender/AFP/Getty Images (zeit.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