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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정착하지 못하면 실패일까

by 가을밤

온라인에서 우연히 어느 유학생의 글을 보게 되었다.


"유학을 마치고 이곳(해외)에 정착하고 싶었는데 결국 잘 되지 않아 귀국 티켓을 끊고 말았다"고. 담담하게 쓴 듯 했지만, 정착에 실패한 좌절감과 실망, 그리고 귀국을 선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사람마다 해외에 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공부를 위해, 누군가는 아이 교육을 위해, 또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온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시기를 거쳐 어느정도 일상 루틴이 확고해지고, 거주가 안정되고,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수 년간 이어지며 현지의 환경, 문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면 흔히 '정착했다'고 표현한다.


아이러니한건, 그렇게 정착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너 거기서 평생 살거야?"라고 물으면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해외에서의 정착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과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행이 낭만적이고 즐거운 이유는 낯선 환경에 내 삶을 실제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워홀이나, 유학생활도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여행의 연장선이다. 물론 단기 관광과 비교할 수 없는 고생스러움과 고통이 동반되지만, 졸업이라는 종료 지점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가면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심리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넘겨 취업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등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선택의 기회'가 언제 다시 올 지 알 수 없다.


어떤 직군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회사에 가느냐에 따라, 또 인생의 동반자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수많은 갈림길에서 크고작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또 어떤 선택은 되돌리기가 정말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에 돌아가는게 해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든 어려움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회 역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기회가 사라지는 게 아니고, 이곳에 남는다고 해서 없던 기회가 반드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유학생일땐 [외국인+학생] 이었다면, 졸업 후에는 학생이란 보호막이 없는 그냥 [외국인]이다. 학생으로서 얻는 장점은 사라지고, 이제는 오로지 내 힘으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시간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기대한 기준이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말은 안하지만 비유럽계 외국인을 암묵적으로 승진 대상에서 미리 제외시켜버리는 회사도 많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워야 하고, 또 싸워도 소용이 없어서 그저 순응하고 사는 부분도 생긴다. 예상치 못한 사고나 법적 문제에 휘말려 오랜 싸움을 해야하는 순간도 올 수 있다.




만약 같은 어려움이라면, 기왕이면 '내나라'에서 겪으면 대응하기가 조금은 더 수월할 수 있다. 한국이 완벽하거나 천국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고, 외모가 비슷하며, 그 언어를 100% 이해하며 대처할 수 있다는 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다. 나는 현재 독일어로 생활하고 일하는데 지장이 없지만, 모국어인 한국어만큼 편하지는 않다. 종종 머릿속 스위치를 끄고 있다보면 배경 소음처럼 지나가버리는 말들도 있다. 아무래도 성인이 되어 '의도적으로 습득한' 외국어이기 때문에, 여기 사는 이상 일정부분의 불편함은 평생 안고가야할 것이다.


결국 귀국을 선택하는 것도 인생의 수많은 선택 중 하나일 뿐이다. 그건 실패도, 끝도 아니다. 누군가에겐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내가 가진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한국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귀국한다고 해서 영영 해외에 다시는 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삶의 속도와 모습이 다르고,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내린 선택을 스스로 납득하고,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해외에 계속 살든, 한국으로 돌아가든, 돌아갔다 다시 나오든 ,그 어떤 길도 틀린 건 없다. 그저 인생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여러갈래의 길 중 하나일 뿐이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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