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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석 Nov 15. 2023

들꽃 같은 아이

참된 글

오래전 아이들과 글 작업을 하며 썼던 글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는 6학년으로 이름은 정연빈이다. 연빈이네 가족과 부모님은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이사를 갔다. 연빈이는 마치 시골에서 자라 난 아이처럼 시골 생활에 적응을 참 잘했다. 보이는 모든 경치, 만나는 사람, 동물, 식물 모두 신기해한다. 마음이 착해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다. 인간은 자연을 닮았기에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참으로 선한 것 같다. 그 가운데 연빈이는 자연 그 자체인 아이다.

여기에서의 마주이야기는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를 실천해 보고자 하였다. 오랫동안 고장에서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의 말 한마디는 녹아 있는 인생 철학과 같은 말이다. 함축적인 시요, 철학이다. 그리 많이 배우지 못한 분이라도 삶 속에 녹아 있는 생명과도 같은 말들이다.


│소│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이다. 옆에 철봉 같은 것이 앞 쪽에 붙어 있는 파란 트럭 속에 소 두 마리가 들어 있다. 트럭이 앞으로 움직이니 소가 뒤로 밀렸다. 뒷다리가 살짝 밀리니 다시 끌어올렸다. 아버지가 그 옆으로 가 보니 한 놈 얼굴이 쭈글쭈글한 게 하마 같다.

“아빠, 고거 참 하마 같다. 소 얼굴이 저런 건 아마 저 소 밖에 없을 거야”

동생이 말했다. 소는 울지도 않았다. 그냥 서 있다. 차가 갑자기 보도블록 쪽에 붙어 있다. 마침 빨간 불이라 우리 차도 멈췄다. 아저씨는 길가는 사람하고 얘기를 했다.

어, 이거 누구야? 민호 아니야?”

“어, 아니 자네 근데 웬 소야?”

“아, 이놈들 늙어서 일도 못해서 팔아 버릴라꼬”

하셨다. 소는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 같다. 그 소는 오래 살아 모든 걸 다 아는 모양이다. 자기가 발버둥 쳐야 아무것도 안 되는 걸 아는 모양이다. 소는 조용하다. 일만 실컷 하다 잡아먹히는 소는 너무 불쌍타. 한 번만 놀아 봐도 행복할 것 같다.

                                                                                                                        【‘소’ 중에서】


글을 읽어보고 좀 더 지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체적으로 글은 마치 눈에서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듯 순간적으로 자세하게도 참 잘 썼다.

“글이란 이렇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자세하게 써야만 해요. 아주 아쉬운 점은 아저씨끼리 만난 사람이 좀 더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텐데. 그것이 조금 아쉽네요”

자세히 이야기해 주니 알아들었다는 듯 통통한 얼굴이 끄덕였다. 박문희의 ‘마주이야기’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들어 썼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부모와 동네 사람들 이야기,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이야기들을 오가는지 수첩에 적게도 했다.


│칠순│


(…)

아빠가 국수 눌르는거 구경 가라 그래서 가 봤다. 가보니까 어떤 아저씨가 반죽을 기계에 넣고 꾹 누르니까 쭈룩쭈룩 비 오듯 떨어졌다. 아주 가늘고 긴데 똑똑 잘 끊어졌다. 너무 신기해서 한참 보고 있으니 아저씨들이,

야 이거 가지고 바닷가 갈까?”

“아우야! 바닷가 가자”

했다. 엄마가 농사진 토종이라 했다. 또

이 아저씨가 직접 농사 진거야” 했다.

“다른데선 여기다 밀가루를 섞는데 이건 순 메밀만 가지고 한 거야. 좀 있다 먹어 봐라 구수하지”

(…)

우리가 집으로 와서 들으니 ‘찬찬찬’, ‘소양강 처녀’ 같은 노래가 나왔다. 어떤 아저씨가 사회를 보는지는 몰라도 “박수”, “야, 좋아요”, “좋오타” 하시는 걸 들으니 재밌고 시골의 떠들썩한 잔치 같았다.

                                                                                                                    【‘칠순’ 중에서】


이밖에도 싸우시는 아줌마 아저씨 이야기도 썼다.


아줌마가 네모난 상자를 가방에 넣고는

“에이 씨, 증말 드러워서”

하셨다. 그러니 아저씨가

“아참- 아 - 그래 드러워서 어쩔 거야?”

하셨다.

“아주 이 인간이 미쳤어. 배짱 심보야, 으그- 이런 인간 때매 못살아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돼”

아줌마가 말씀하셨다. 그 아저씨는,

“뭐, 인간?”

했다. 아줌만,

“그럼 인간이지 짐승이야?”

하셨다. 아저씨는,

“야!”

하시는 거다. 아줌마는,

“야아- 헝”

하셨다. 아저씨는,

“그럼 얘야 그러냐? 하여튼 드러워서”

하시면서 바닥에 침을 탁 뱉는다. 그때 어떤 할머니가 지나가시며,

“네 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런 데서 싸워”

하시면서 지나가셨다. 아줌마는 악을 바락바락 쓰시며,

“이런 거 팔아 놓고 뭔 소리야. 하여튼 회사나 인간이나 똑같애.”

하셨다. 4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는 엄마 옆에서,

“엄마”

하고 싸우는 엄말 불렀다. 그러니 아줌마는 신경질이 난 것처럼,

“가만있어”

했다. 아저씨는 그 틈에 차에 탔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

“지가 좋은 것 안 고르고 선”

했다. 아줌마는,

“뭐야 뭐?”

했다. 그래도 아저씨는 그냥 간다. 아마 아저씨가 무슨 물건을 팔았는지는 몰라도 물건을 안 좋은 거 판 모양이다. 비켜 달라고 하니깐 안 비켜 줄라 하는 것 같다. 아저씨도 나쁘다. 아줌마는 어떻게 애기가 있는데 그 앞에서 욕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놓고 애한테는 욕하지 말라 하겠지.

                                                                                           【‘싸우시는 아줌마 아저씨’ 중에서】


그 생생한 글 하나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대상이나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는 생각을 하게 한다. 비로소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 당당하다. 너무 무미건조한 어린이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내용보다는 좀 더 넓은 세상 속에서 찾아보게 하는 마주이야기 같은 연빈이의 글쓰기는 야성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참 자세하게 써 내려갔고 그것이 아이의 올바른 삶으로 직결되는 것 같다. 글쓰기가 연빈이의 멋진 삶으로 이끌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세상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자세하게 글을 써 내려간다면 그 글 자체는 이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험하는 글쓰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글만으로도 나는 알 수 있다. 그 깨끗한 글 속에 연빈이의 삶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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