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쏭 Dec 25. 2023

눈보라 속 비행~

지난주 눈보라가 몰아쳤던 제주공항에서…

얼마 전 대구에서 시작된 비행은 에어라인에서 경험한 손꼽을 만한 고단하고 힘든 비행이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국내선 4 Leg (대구-제주-김포-제주-김포)  동안..


총 비행시간 7시간 14분, 근무시간 11시간 8분..

두 번의 디아이싱과 10번이 넘는 기장 방송..

수시로 폐쇄되는 활주로…

그리고 셀 수 없는 사무장과 통화…

Short Final(착륙 활주로 바로 앞)에서 항공기의 계기판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한 난기류(Turbulence)..

그리고 한 번의 복행(Go round) 후 착륙..

항공기 허용 최대 제한치 바람에서 2번의 이륙과 2번의 착륙..

눈보라로 인한 저시정…

미끄러운 주기장(Ramp)과 활주로(Runway)..

날개 위 제설 작업(De-Icing) 후 다시 쌓이는 눈..

이륙 직전까지 고민하는…


“All aircraft stop in the ramp area due to brake action poor(주기장 내 모든 항공기는 정지하세요)“

관제탑에서 톤 업된 목소리로 교신이 흘러나온다.


눈보라가 녹았다 얼었다가 반복되다 보니 공항 주기장이 모두 빙판이 되었다.(대부분의 제설 인원은 활주로에 위치)


눈보라 속에 서있는 지상 조업사 직원(Ground staff)..

칵핏과 전선 한 줄로 연결되어 있는 인터폰이 전부…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칵핏에 있는 나로서는 미안함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라운드(Ground), 칵핏(Cockpit)“

내가 지상 직원을 불렀다.


”말씀하세요(Go ahead)“

인터폰 너머로 가뿐 숨소리가 들린다.


”푸시백(Push-back)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어요.. 저 혹시 전화번호 하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관제탑에서 푸시백 허가 나면 바로 전화 연락 드릴게요~

항공기 근처에 어디서 눈이라도 피하실 수 있는 곳에 잠시라도 들어가 계세요~“

”아~감사합니다~ 010-XXXX-XXXX입니다 “


평소에는 항공기 비컨(Beacon) 라이트나 택시(Taxi) 라이트를 켜면 오시라는 신호로 사용했으나, 눈보라가 워낙 심하니 그마저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연락처를 여쭤봤다.

.

..

(중략)

이후 푸시백과 디아이싱 후 눈보라가 불는 제주를 떠나 김포에 도착~


대구에서 제주로 다시 제주에서 김포..

그리고 김포에서 제주 왕복이 한번 더 남아 있다..

제주 기상을 모르고 가면 쉽게 가겠지만, 이미 제주에서 날씨를 경험하고 나온 나와 부기장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시 출발 전 운항통제에 문의하니 간간히 고어라운드나 장시간 홀딩 후 회항하는 항공기들이 있다는 정보를 준다.

연료는 제주 상공에서 이미 한 시간 이상 버틸 수 있는 연료를 실었다.


나와 한번 제주를 다녀온 객실 승무원들은 교대를 위해 김포에서 퇴근 후, 새로운 객실 편조가 탑승했다.


”사무장님~제주 날씨가 상당히 안 좋아요.. 착륙 준비를 2만 피트에서 미리 다 하시고 승무원 포함 전 인원 의자에 착석하고 계세요~“


또다시 제주로 출발…

불과 바로 전에 다녀온 항로라 날씨는 큰 변함(?)이 없이 좋지 않다. 오히려 기류는 아까보다 더 좋지 않다.


제주 접근 관제소로부터 접근 허가를 받았다.


부기장에게 오더 한다.

“Gear Down” “ Flap 15”


기류가 심상치 않다.

“Flap 30”


나는 착륙 전 마지막 체크리스트를 오더 했다.

”Before Landing Checklist”


부기장의 목소리에 오늘따라 무게가 느껴진다.

””Before Landing Checklist Completed”


활주로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난기류로 인한 흔들림이 점점 더 강해진다.

간간히 객실에서 롤러코스트 탈 때처럼 놀라는 소리도 칵핏 공간을 타고 간간이 들려온다.


자동 조종 장치(Auto Pilot)가 거친 눈보라 속에 요동치는 항공기 컨트롤을 힘겨워한다.


“Auto pilot Disengage” “check”

“Auto Throttle Disengage” “check”


속도 유지와 항공기 경로(Localizer와 Glide Slope)를 못 따라가니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수동으로 전환하여 내 손으로 잡아챘다.


조종간을 움켜잡은 양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활주로에 거의 다 왔다.


“Minimum” “Landing”

그러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One Hundred “

활주로 위 돌풍과 뒤에서 밀려오는 급변풍으로 속도는 늘어나고 항공기가 안 내려간다. 이렇게 내리면 계획된 지점에 착륙 불가다.


”Go around!! ”

“TOGA! Set Go around thrust!”

부기장에게 평소와 다른 강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착륙을 위해 활주로를 향하던 기수는 어느덧 하늘을 바라보며 상승 중이다.


관제사가 물어본다.

“어떻게 하시겠니까?”


옆좌석 부기장이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한번 더 접근 요청해 주세요~”


이번 접근 시도 후 착륙이 불가하면 회항 시 필요한 브리핑을 하며 다시 한번 제주 접근 관제소의 레이더 유도를 받았다.


제주 관제탑에서 착륙허가를 준다.

“Clear to Land, Wind 340 at 19kts gust 28kts


두 번째 접근도 첫 번째와 비슷한 기상…

다행히 100ft 이하로 내려오니 아까와 다르게 돌풍이 많이 줄었다.


“Landing”

“Speed Brake Up! Two reverse Green!”

부기장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린다.


착륙 후 게이트(Gate)로 진입을 위해 램프를 들어가는데 온통 빙판에 미처 제설되지 못한 눈들이 곳곳에 쌓여있다.

“Engine Shut Down”


하지만 아직 나에겐 마지막 숙제가 남아 있다.

김포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나는 김포공항이 문을 닫는 커퓨타임(curfew)도 고려해야 했기에 신경 써야 할 아이템이 하나 더 늘었다.


승객 하기와 동시에 항공기 외부 점검을 위해 눈보라 속으로 내 몸을 밀어 넣는다. 나는 잠시지만, 급유, 승객분들의 캐리어를 카고에 싣는 조업사분, 정비사 등

이루 말을 다 할 수 없는 많은 분들이 오랜 시간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 지금 내가 느끼는 추위는 창피할 만큼이다.


이륙 준비와 승객 보딩이 완료되었다.


아까와 데자뷔 같은 상황이다.

”그라운드(Ground), 칵핏(Cockpit)“

”말씀하세요 “

”저희 푸시백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어요.. 저 혹시 전화번호 하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순간 불러주는 전화번호가 익숙하다.

“아까 낮에 저희 조업해 주셨던 분이시죠?”

“네 맞습니다~”

“전화번호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아까처럼 연락드리겠습니다. 눈 피해 계세요~”

“감사합니다”


출발을 위해 디아이싱을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김포 공항에 밤 11시까지는 랜딩을 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장의 콜이 들어온다.

“기장님~ 저희 김포에 내릴 수 있을까요? 승객분들이 문의를 하셔서요~”


“아직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디아이싱 순서 때문에 예측이 어렵습니다. 비행 계획이 변경되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


최소 제주 공항에서 22시 10분 전에는 이륙해야 한다. 물론 안전한 운영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물론 안되면 인천공항으로 도착지를 변경해야 한다.


회사에서 통보받은 나의 순서는 62번 디아이싱 패드에서 3번째… 현실적으로는 사간 안에 이륙 불가…


“기장님~ 그라운드(Ground)입니다.”

“말씀하세요~”

눈을 피해 쉬고 있을 그라운드 스텝에게 콜이 들어왔다.


“제가 디아이싱 패드 상태를 보니까, G3 패드 쪽에 대한항공 항공기가 디아이싱이 끝나고 출발하려는데 뒤에 기다리는 항공기가 없어 보입니다. 한번 회사랑 제주 타워에 문의해보세요”


“아~네 감사합니다.”

반신반의하며 회사에 컨택을 해서 상황을 전달하니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연락이 왔다.

“기장님~ G3 패드로 바로 가실 수 있고요, 디아이싱 바로 가능하답니다”


이게 웬일인가?

상황을 보니 눈보라로 관제탑에서 디아이싱 패드가 한 곳이 비어 있었던 상황이 식별이 안되고, 절차상 무엇인가가 꼬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상황을 내 항공기 지상 스텝분이 실내 안 들어가 계시고 눈을 맞으며 지켜보다 나에게 조언을 해주신 것이다.


“그라운드, 칵핏”

나는 그라운드 스텝을 불렀다.


“말씀하세요~”


“저희 푸시백 진행 허가받았습니다. G3패드로 이동하겠습니다. 마냥 기다릴뻔했는데, 덕분에 시간 안에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이후 디아이싱 패드에서 제설작업을 완료한 후 눈보라가 날리는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할 수 있었다.


순항 고도에 도달할 때 까진 계속 흔들렸기에 벨트 사인은 여전히 켜 두었다.


”승객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김포 국제공항까지

모시고 가는 기장입니다.

-중략-

김포국제공항에 도착 예정 시간은 22:55입니다.

.

..

최종 김포공항 Touch Down 22시 57분..

공항 Close 3분 전..


많은 승객분들이 한파 속에 시내와 멀리 떨어진 인천공항에서 귀가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승객분들이 웃으며 삼삼오오 항공기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기장석 창으로 비친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안전하게 비행했다는 안도감이 몰려온다.


비행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집중하고 염원할 때 안전한 비행이 이루어진다.

혼자만 달려 나가서도 안되고, 누구 하나가 뒤쳐져서도 안 되는 한마음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도왔다.

내 옆에 부기장, 객실 승무원, 지상 직원, 관제사 그리고 하늘이~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 항공기에 탑승한 수백 명의 승객들처럼, 나 또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오늘도 안전하게 비행을 마치고 따뜻한 나의 집으로 퇴근한다.


ref. 디아이싱(De-Icing)

; 제설/除雪, 제빙/除氷

; 항공기 동체나 날개 위에 쌓인 눈이나 결빙된 비, 얼음 등을 비행 전에 제거하는 절차

; 겨울철 항공기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임.


ref. 정해진 지점에 착륙이 안되면 착륙 후 남은 활주로 길이가 적어지고 더구나 눈이 내려 쌓인 활주로는 제동 거리가 길어져 활주로를 벗어날 위험이 있음.


ref. 홀드오버(Hold-over) 타임(Time)

; 제설 작업 및 방빙작업 후 동체와 날개 표면에 눈이 다시 쌓이거나 또는 서리 등이 다시 생성되어 항공기 이륙에 영향을 주는 시간.

; 방빙작업을 한 항공기는 이 시간 안에 이륙을 해야 하며 이 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다시 제설 및 방빙 작업을 실시해야 함.


ref. 김포공항 커퓨타임(curfew)

; 공항운영 시간(23:00)이 지나면 대체 공항(보통 인천공항)으로 회항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쁜 일? 좋은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