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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느와르 11화. 주먹

oh오마주 오리지널 창작소설.

by oh오마주

섬에게 남은 것은 주먹뿐이었다. 발의 속도와 힘을 잃은 가냘픈 주먹. 대단한 듯 휘둘렀지만, 바람소리만 났을 뿐, 얇은 뼈소리가 났다. 헐렁한 양복 속으로 나뭇가지를 숨기고 언제나 있는 힘껏 휘둘렀다. 사람을 향한 적도, 무언가를 내려 친적도 없다. 매일 '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언제나 빠르게 태세파악을 하는 게 유리했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눈치머리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겁이 없어야만 깡패를 한다고 하지만, 겁이 많아야 깡패를 계속할 수 있다. 겁 없이 아무대서나 주먹을 휘두르면 양 주먹이 은팔찌로 묶인다. 공권력을 최대한 이용하고, 법망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말고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일찌감치 교도소를 들락거리면, 갈수록 빠르고 많이 간다. 나오고 돌아갈 곳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길바닥에 고양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사람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섬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목에 푸른 핏줄이 자신을 칭칭 감았다. 섬의 세상은 냉혹하고 잔인하지만, 지은 죄는 용서받을 길 없었다. 태어나 살아온 시간을 원망하고 후회해 본들 늦은 일이었다. 운이 좋아서, 많은 경험을 했고, 운이 좋아서 도박에서 빠져나왔다. 운이 좋아서 뚝이를 만났고, 운이 좋아서 최소한 한 명에게는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혹은 섬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기억해 줄 사람 없는 섬에게 육성을 남기고, 기록한다는 것은 가령 나쁜 짓일지라도 '다른 희망'이었다. 숨만 쉬는 반복적인 하루를 버텨낼 '다른 힘'이 되었다.


섬은 핸드폰을 꽉 쥐었다.


섬은 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탁이 있어서, 할 말이 있어서, 혹은 어떠한 안부가 궁금해서, 아니면 외로워서, 뚝이 핑계로, 섬은 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형님

"아, 학생. 통 연락이 없어서 말이야. 그날은 내가 미안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어."

- 아, 한동안 병원에 있었어요.

"어? 무슨 일 있는 건가? 사고라도 났어?"

- 아뇨 아뇨.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내일은 어떠세요?

"나야 별일 없지."

-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서 보실래요? 엄마가 아프셔서 나가질 못해요. 뚝이도 같이 오세요.


연은 전화를 끊고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엄마를 봤다. 동은 침대에 마른 꽃다발처럼 가지런히 누웠다. 눈동자도, 머리 색깔도 닮지 않았지만, 연은 분명 엄마처럼 초콜릿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연이 광분한 날에 동은 함께 죽자며 함께 먹었다. 연은 회복했지만, 동은 회복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는 달콤하고 행복한 맛이, 두 모녀에게는 끔찍하고 악독한 맛이었다. 등져버린 노을과 어둠은 두 모녀를 삼키기만 할 뿐, 품지 않았다. 그러나 연은 소설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동이 깨어나면 나무를 어디에 숨겼느냐고, 아빠는 어디에 있느냐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퍼부을 것이다. 제대로 깨어나기만 한다면, 제발 일어난다면.




12화 '동호회'예고.


3월 30일 일요일, 계속.



ⓒoh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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