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오마주 오리지널 창작소설
남우는 연에게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손에 종이를 쥐어줬다. 연은 고개를 알겠다는 듯, 끄덕이며 주머니에 넣었다. 남우는 왼 손에는 큰 옷가방, 오른손에는 동의 손을 잡았다. 연은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봤다. 아쉬움이었을까, 남우에게 쉽게 동을 내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종이에는 국제번호와 미국주소가 적혀 있었다. 연은 종이를 찢어서 마당에 던졌다. '찾을 필요 있을까?' 연은 나방을 떠올린다. 불빛을 좇는 것만이 유일하게 살아가는 목표일까. 내가 찾아 헤매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동이 남우를 따라 먼저 집을 떠난 뒤, 연은 남아서 집을 비웠다. 오랜 시간 묵힌 흔적들을 비웠다. 오래된 물건들도 밖으로 쉽게 나왔고, 스티커 한 장에 쉽게 끝났다.
텅 빈 집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커다란 허전함은 커다란 구멍과도 같았고, 그 구멍은 짙은 갈색- 옅은 벽돌책- 검은색과도 같았다.
함께했을 때에는 당연한 불안이었다. 계속되는 불안은 불행이었다.
그러나, 각자의 색으로, 각자의 자리로, 행복으로 가는 선택이 되었다.
'그때는 왜 내가 더 촘촘하지 못했나.'
연은 가족의 유일한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과연 그랬을까, 질문과 동시에 그렇지 않다는 답이 나왔다. 비워진 지금은 태초로 돌아갔다. 아담과 이브로 돌아갔다. 연은 마지막 동의 모습만을 기억하기로 했다. 동은 연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약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연에게 말했다.
“내 사랑도, 총체적이야.”
연은 동의 깊은 동공 속에서 작은 '움직이는 어떠한 물체'를 봤다. 작고 반짝이며 헤엄치는 것, 숨 쉬는 존재. 붉고 붉은 여울 속에 파랗게 번져나가는 생명. 완벽한 형태는 없으나, 완벽한 감정이 있었다.
연은 그동안 썼던 메모들을 모았다. 모아놓고 나면 중편 소설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은 급한 완결이었다. 제한시간에 완료된 가족사는 연에게 숨겨진 작은 암덩이였다. 지금은 모른 척하는 것도 괜찮다며 실소 지었다. 웃는 순간에 떠오른 것은 섬과 뚝이었다.
녹음기로 섬의 목소리를 들었다.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집을 정리한 날, 연은 섬을 찾아갔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섬의 흔적들은 지워지고 없었다. 밖으로 쉽게 나온 감정이었고, 스티커 몇 장을 붙인 듯 쉽게 끝났다.
그리움, 그것만 남기기로 했다. 연은 그들을 위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비장한 모습으로 손목을 털고 자세를 잡았다. 연 만의 백지를 펼쳤다.
*
'안타까운 고독사 소식, 전해드립니다. 서울시 OO동 40대 남자와 개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수면제를 과다복용하여 자살한 것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망자가 키운 것으로 추정되는 푸들은 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망 당시, 주인의 품에서 있어서 더욱 안타까웠다는 소식입니다.'
큰 전광판 뉴스에는 자취방에서 개와 음독 자살한 40대 남자의 사망 소식이 나왔다. 거리를 바쁘게 옮기는 사람들, 뉴스에 입을 틀어막는 사람들, 차에서 전광판을 보는 사람들... 사람은 많은 데, 그를 알아보는 이는 하나 없다. 한 사람이 없어졌고 세상이 뒤틀린 적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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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사람들>
작가 : 홍지연
세상은 그들에게 아름다웠다.
뚝과 섬은 자유롭게 바다를 뛴다.
섬은 공중에서 태권도 발차기를 한다.
높지도 퍼석하지도 않은 모래를 뛴다.
웅장하게 펼쳐진 하늘과 바다는 그들에게 아무런 짙은 색을 바라지 않았다.
언제나 파스텔 빛깔, 행복한 파스텔 톤,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들은 그런 세상에서 남겨진 유일한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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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소설은 연재 예정, '화(가제)', 옴니버스 소설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