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첫 한파. 11월 최저 온도를 기록한 날이다.
구름 하나 없이 눈부시고. 뿌연 먼지 속에 늘 흐릿하던 산마저 선명하게 보이는 그런 날. 눈이 시리도록 맑은 늦가을 아침이지만 감탄을 발할 새도 없이 싱숭생숭한 마음이 가득한 면접 가는 길.
내년 채용을 확신할 수 없어 주기적으로 채용공고를 뒤지고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 부지런히 서류를 접수한다. 교육정책 변경으로 채용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언제 실업자가 될지 모르는 불안함은 모르는 척 덮어놓는다.
서류를 넣으면 1차 발표 전까지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매번 비슷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지만 내용을 수정하고 전송하고, 연락을 기다리는 일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석박사에 화려한 경력을 가진 지원자들 틈에서 일단 남아만 보자, 면접은 그래도 볼만하다 생각한다.
가족들 앞에서는 아무런 내색 안 해도 내 몸은 주인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챈다. 한동안 잠잠하던 위염이 슬그머니 기세를 보이며 메스꺼움, 울렁거림, 불규칙한 두통을 끌어온다. 약을 먹고 좀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찬물 끼얹듯 시원한 효과는 없다. 그냥 시간이 지나길 바랄 뿐.
세 곳 중에 한 곳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집에서 9km. 좀 멀다 싶지만 주 1회 출강이니 나쁘지 않다 싶은 겸손함으로 임한다. 대기하는 동안 다른 면접자와 눈인사 후 요즘 채용 분위기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눈다. 면접에 들어가서는 면접관의 질문에 아무 말 대잔치인지, 조리 있는 똘똘한 답변인지 모를 말들을 잔뜩 풀어놓고는 일단 끝났음에 안도한다. 돌아오는 길, 긴장이 덜 풀린 건지 멀쩡한 시내 길을 두고 엉뚱한 고속도로를 잠시 올라타고 만다. 애꿎은 톨게이트비 1천 원만 지불한 채.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등이 빳빳하게 굳은 채로, 다음 수업을 위해 잠시 쉴 곳을 찾은 스타벅스. 위염에 최악인 최애 커피와 밀가루를 버무려둔 트레이를 놓고 흡족하게 사진을 찍어본다. 마음이 편해지면 위염은 자연치료 될 것이라 믿으며.
전면 통창에 정오의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자리에서 언 몸을 녹이고 차분하게 책을 읽는다. 글자를 읽다가, 합격과 탈락 시물레이션을 왔다 갔다 하느라 사실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겠다 싶지만, 불안함은 감출 수 없다.
이틀 후, 합격자 발표날이 되자 오전부터 온 신경을 핸드폰에 집중한다. 오후가 되어서야 딩동.
그래, 일단 계속해보는 거야. 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겠지.
실업자가 되면 어떠리.
남편 월급 쪼개 쓰며 알뜰주부가 되면 되는 것이다. 마음껏 읽고 쓰고 운동하며 나 자신을 돌보고 가꾸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날들을 채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채용 공고를 뒤질 계획이다.
이 길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