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나 기회는 좀처럼 없던 사람이다. 그 흔한 로또도 사볼까 생각만 하고,이벤트나 뽑기에 적극적인 성향도 아니다. 대체로 극적인 행운과는 연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하다 못해 큰 아이 유치원 추첨도, 방과후학교 인기 프로그램에서도 대기번호 한번 받아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제까지 별 요행 없이 묵묵하게 살아온 것도 있겠다.
처음으로 학원강사가 되어 어설픈 현장 경험을 쌓아가던 때도 날마다 구인정보를 늘 뒤적였다. 사교육 시장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교육청 구인란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던 어느 날. 눈이 번뜩이는 공고를 발견했다. 돌봄 교실 특기적성수업 독서논술 강사.
학사 일정이 명확한 학교는 대개 새 학기 이전에 강사 채용을 마무리 짓는다.6월이면 한 학기가 끝나가 티오도 없는 애매한 때인데, 마침 코로나 팬데믹이 안정화되면서 방과 후 수업, 돌봄교실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던 시기와 맞아떨어졌다.이런 게 운이라는 걸까. 학기 중엔 대부분의 강사들이 고용된 상태이므로 나 같은 초짜 강사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학교 강사는 교원자격증 여부, 학교 강사 경력이 가장 우선이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일단 해보자는 심산으로 지원서를 냈는데 면접 연락이 왔다. 학원 경력으로 독서논술 수업의 포부를 살리고, 자원봉사 이야기를 꺼내며 그림책 수업에 진심임을 밝혔다. 학교 경력은 정식 강사가 아닐지라도 근거리에서 지켜본 그간의 경험들을 소소히 나누었다. 베테랑 면모는 없었지만, 거짓말을 빼고 최대한 나를 잘 포장한 모습으로.
학교 강사 경력은 전무했으나 초등엄마 경력 6년이 더해져 나는 그렇게 새로운 일자리에 안착했다.
주 2회, 2차시씩 수업, 시간당 3만 원의 강사료. 인원 수로 강사비가 책정되는 방과 후 수업에 비하면 코웃음 친다는 금액이라지만, 최근 내가 받아온 페이 중 가장 높은 금액이었다. 얼마인들 내가 하고 싶던 일을 찾았다는 성취의 기쁨만 하랴.
학교 급식실에서 밥과 반찬을 배식하고,
그림책 놀이활동 자원봉사를 하고,
주민센터에서 공공 일자리를 거치고,
초등학교에서 방역과 원격수업 도우미를 하다가
오전엔 초등학교 학습준비물실 알바를 하며,
오후엔 학원 파트타임 알바.
엄마로서 나로서 방황하며 겪은 알바의 시간들을 떠올린다.묘하게도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어느 하나 버릴 것 없던 경험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듯, 자괴감이나 서글픔에 욱했던 시간마저도나를 정금 같이 단련하듯 모든 순간들이 오롯이 열매를 맺는 듯했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스펙을 쌓으려고 차곡차곡 모은 것도 아닌데.
생활비에 좀 더 보태려고,
아이들 없는 고요한 시간을 버티려고,
엄마 역할이 줄어드는 공허한 기분을 이겨내려고,
강박처럼 일을 찾았고 조금씩 힐끔거리며 두리번댔다.
그렇게 한 학교를 뚫고, 한 달 만에 다른 학교도 추천받아 주 4일 수업을 시작했다. 올해는 초짜 티를 벗은 3년 차가 되어 주 5일 꽉 채워 일하면서 결혼 이후 가장 주머니 넉넉한 한 해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