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같은 실업 급여 수급 기간이 끝나고 안착한 일은 인근 초등학교의 방역지원 업무다. 전체 10 학급에 전교생 200명 남짓한 작은 학교. 대부분 과밀 학교가 있는 신도시지만 이 학교는 유난히 인원이 적었다. 주 14시간으로 오전에만 근무하는 방역 지원은 코로나 시기에 학생들의 거리 두기를 지도하고, 교내 기물과 시설을 소독하는 업무였다.
면접에서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젊었던 나에게 교감선생님은 잘하실 수 있겠냐고 몇 번을 물었다. 하루 이틀 하고 그만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면접 자리에선 언제나 "잘할 수 있습니다."가 국룰이지. 그리고 나에게는 배식 도우미라는 육체노동 짬이 있지 않은가. 뭣보다 정말 인자한 얼굴의 교감 선생님의 태도가 한번 해보자는 내 결심을 굳혔다.
"우리는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어른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들만 아끼고 예뻐해 주시면 됩니다."
합격 통보를 받고 바로 출근한 날, 바로 두 번의 위기를 맞았다.
첫 번째 위기, 70대 할머니와 동료가 되다
보름 전부터 출근했다던 나의 동료는 시에서 지원한 공공 일자리로 파견된 70대의 할머니. 친정 엄마보다 훨 나이가 많으신 그분을 보고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나이가 무색한 정정함, 짧은 스포츠머리에 꽃 모직 모자를 쓴 할머니는 살아온 인생만큼 강렬한 인상을 지니셨다.
"나도 학교는 처음인데, 아이들도 착하고 일하기 좋아. 전에는 산후 조리사로 오래 일했지. 애기 엄마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했다고."
휴게 공간에 있을 때면 가끔씩 자신의 이야기도 했다. 바람 난 남편과 일찍 이혼하고 식당을 운영하며 아들을 혼자 키웠다. 그 아들은 중앙대를 나와서 학원 선생이 되었고 몇 달 전에 결혼했다. 이어지는 아들 자랑과 며느리 흉까지 대서사시.
'나 여기에서 일하는 거 맞는 거야?'
섣불리 편견 갖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출근 이삼일 만에 갈팡질팡했다.
두 번째 위기, 낯선 호칭 "여사님"
출근 후 첫 업무인 거리 두기 지도가 끝나면 이어서 시작된 방역 및 소독 업무. 한눈에 봐도 깐깐해 뵈는 60대의 보건 선생님은 스프레이형 소독약과 키친타월이 담긴 바구니를 건넨다.
"여사님, 아이들 등교 끝나면 사물함 손잡이, 계단 난간 같이 아이들 손 닿는 데 위주로 닦으시면 돼요."
"잉? 여사님?"
갓 마흔을 넘겼는데 여사님이라니. 이모, 언니는 들어 봤어도, 사모님은 아니어도 예의상 사모님 소리도 들어봤는데 내 평생 여사님은 처음이다.여사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여자뿐이다.
<여사님> 보통 아줌마를 높여 부르는 표현으로 통용되지만, 이중적 의미도 있다. 운전 못하는 김여사, 마트에서 진상 부리는 김여사, 공중도덕 어기는 김여사 등. 우리나라에서 씌워진 김여사의 이미지가 바로 떠올랐다. 심지어 나는 김 씨란 말이다.
꼬박꼬박 여사님이라 부르는 보건 교사가 어찌나 얄밉던지. 낮아지는 자존감에 한바탕 불을 지폈다. 지금 돌아보면 이 또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었지만.
위기 탈출! 보직 변경
학생 수가 적다 보니 1-2교시만 되도 일은 금세 끝났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한다 셈 치지 뭐.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이런 분위기겠구나. 어디서라도 배울 것을 찾으면 어디든 괜찮다 다독였다.
정년퇴직을 앞둔 소녀 같이 예쁜 교장 선생님, 인자 그 자체 교감 선생님. 시크하지만 똑 부러지는 20대의 실무사, 약대생인데 우울증이 있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는 청년, 수업 내내 복도를 방황하는 ADHD 아이와 힘들게 쫓아다니는 기초학력 선생님, 학습 준비물실의 대학생 봉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분위기를 경험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의 각도를 조정했다.
가끔 무기력함이 찾아올 때면 한 달에 50만 원 조금 안 되는 급여 입금 알림이 딩동. 또다시 마음을 되잡았다.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 컴퓨터실에서 원격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의 보직도 바뀌었다. 줌 수업 초기여서 세팅이 익숙지 않고, 음량과 비디오를 조정하느라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인력이 필요했던 것. 근거리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수업을 도와주는 뭔가 어엿한 느낌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옷차림보다 정갈하게 갖춘 옷차림으로 바꾸고 나니, 태도도 마음 자세도 이제 김여사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저 여사님 아닌데요.
목소리의 크기와 상관없이 마음 안에서만 외치는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나만 갉아먹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