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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Nov 25. 2024

40대에게 만남의 광장은

부모님의 장례식장이다

이른 아침, 남편의 카톡.

- A누나 아버지 돌아가셨대.


A누나이자 A언니는 우리 부부의 오랜 지인이다. 결혼 앨범을 들여다보면 셋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있는 사이. 다 같이 교회 청년부에서부터 인연을 이어왔기에 20대 풋풋한 시절의 모습이 더 익숙한 사이일 수도 있다.

스무 살 대학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 결혼과 출산 즈음까지 얼굴 보며 지냈는데, 시간이 흐르고 이사를 가면서 연락이 원해졌다. 마침 A 언니와 친하게 지내는 시누이를 통해 언니의 아버지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직접 부고 소식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마지막으로 얼굴 본  10년은 됐을 텐데 장례식을 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냥 조의금만 보낼까, 그래도  가야 할까. 생면부지의 회사 사람 부모의 장례식도 돈은 보내는데, 그래도 가는 게 옳다 싶어 남편과 길을 나섰다.



항상 세련되고 근사했던 언니를 검은 상복에 까칠한 얼굴로 마주 했다. 만난 지 10여 년이란 시간의 틈은 그 옛날의 추억들이 채워져 어제 본 듯한 익숙함으로 번진다. 언니는 연락도 안 했는데 찾아온 우리를 보곤 놀라움에, 고마움에 눈물을 뚝 떨어뜨리고 만다.

- 연락도 못했는데 어떻게 왔어. 너무 고마워.


고인에게 헌화와 기도를 마치고, 감히 가늠도 못할 슬픔으로 무거울 언니의 등을 가만히 안고 쓸어내린다. 한참을 그러다 별말 없이 아무렇지 않게 얼굴 보고 웃을 수 있는 건 과거에 순수하게 쌓아온 관계의 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조문 후에 들어간 식당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그중 당 한편에서 익숙한 얼굴의 선배를 발견했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으로 가끔 소식은 보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것은 10년이 훌쩍 넘었다. 손을 맞잡은 순간에는 타임머신 타고 스무 살 새내기로 돌아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 어쩜 옛날이랑 똑같니!

- 어쩜 그대로예요?


별말 없이 웃고 떠드는데 어색함이란 없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우리는 분명 나이가 들었는데 왜 그때와 똑같아 보이는 건지. 동시에 나이 들어 서로의 나이 듦을 알 수 없는 걸까. 그 시절이 너무나 선명해 그때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보이는 걸까. 동시에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20대의 충만한 시절이 떠오른다.  


2년 전 다른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선배를 이번에 우연히 또 마주쳤다. 지난번 밥 한번 먹자 하며 헤어졌는데, 그 밥이 장례식장 육개장이 될 줄이야. 다음번엔 제대로 보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는데 알 수 없다. 각자 살기 바쁘니 이름만 기억하다가 가끔씩 카톡 프로필의 알림으로만 안부만 가늠할 수도 있을 테다. 그렇게 인연의 끈을 이어가다 우리는 또다시 어디서 만나게 될까.


학생 신분을 벗은 후 맺은 관계는 일이나 이해관계, 자녀 등을 끼고 있다 보니 서로의 필요가 끝나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만다. 아무리 친했던 친구라 한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고 부지런히 연락의 줄을 잇지 않는 한 관계를 지속하기 쉽지 않았다. 더구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 여력도 없다. 관계를 통해 얻는 기쁨보다는 관계를 지속하는데서 오는 에너지 소모와 피로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점차 내향형 인간이 되어가다 보니 과거의 인연들이 소중하고 그리울 때가 있다. 그저 지금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 충실하게 정성을 다하고 싶다.


내 나이 스물에 만났던 이들을 훌쩍 40대가 되어 우연찮게 마주친 만남의 광장, 장례식장.


아무리 기대 수명이 늘었다 해도 40대는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돌아가실 수도 있는 나이, 비슷한 슬픔을 마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도 언젠가 마주할 수 있는 그날을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가슴이 시린데, 누군가 와서 안아주면 위로가 될 것 같다. 10년 전 아버지를 여읜 남편은 아직도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의 이름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시간 내어 먼 길까지 와준 이들의 고마움을, 수고를 잊지 않으려고 말이다.


늦은 밤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한다. 아는 편에 조의금만 보내지 않길 잘했다고. 수많은 조문객 중에 하나 일지라도, 폭 안고 위로하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경사는 빠져도 되지만 조사는 참석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말의 의미를 해가 갈수록 느낀다. 사회생활이 별로 없던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 떠나실 그날이 올 텐데, 누구와 슬픔을 나눌까. 번듯한 사회생활보다 나 홀로 노동에 가까웠던 부모님의 생애가 유난히 슬프다. 우스개 소리로 내 장례식엔 올 사람이 없을 거라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괜스레 떠올라 슬프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유지되는 관계마저 가지치기되는 삶. 나날이 축소되는 인간관계일지라도 슬픔을 나누어야 할 누군가가 있다면 잊지 말고 함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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