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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Nov 23. 2024

너는 프라모델을 해라, 나는 글을 쓸 테니

부부의 취미생활


톡방에 매일 수십, 수백 개의 알림이 뜬다. 단체 톡방은 글쓰기를 좋아하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 지속적인 글쓰기를 원하는 동기들이 함께하고 있다. 대부분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모였지만 사는 곳, 직업 또한 다양하다.

최근엔 브런치작가로 데뷔하자마자 출간 계약을 따낸 한 동기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다. 자랑스러운 마음에 내가 속한 작가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에게 늘어놓자 가만히 듣던 남편이 묻는다.




-다들 글은 왜 쓰는 거야?

(진심으로 궁금한 뉘앙스)


-그냥 쓰는 거지. 뭔가 쓰는 동안에는 생각도 많이 하고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거든.

(쑥스럽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대화이므로)


-안 어려워?

(뼛속까지 이과인 남편은 격식 갖춘 장문의 문자메시지 쓰기도 어려운 사람)


-그냥 내 이야기 쓰는 거니까 괜찮아. 이건 마감도 없고 생각날 때 틈틈이 쓰는 건데 뭐. 은근히 재미도 있어.

(T남편은 공감 못 할 거라 생각하며 최대한 게 설명하기)


-아! 내가 프라모델 조립하는 거랑 비슷한 건가?

(적당한 비유를 찾았다는 기쁨을 드러내며)


-아 그러네. 비슷하구먼.

(뭐지, 이 의외의 반응은)





남편의 취미는 건담 프라모델 조립이다. 처음엔 하나씩 사서 만들고 방구석 진열을 시작하더니, 점점 각종 장비를 늘리면서 급기야 방 하나를 점령했다. 니퍼, 핀셋, 브러시, 마카 등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멀쩡한 새 제품을 조각별로 다시 도색해서 자기만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며 뿌듯해한다. 노안보다 강한 의지로 깨알 같은 설명서를 뚫어져라 보고 두꺼운 손으로 손톱만 한 부품을 조심스레 끼운다. 

몇 날 며칠 걸려 완성한 건담들을 보며 혼자 감상하고 흡족해하는 이 남자는 도대체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 것인가. 개봉도 안 한 프라모델 상자가 한가득인데 이벤트 제품을 꾸준히 사서 모으는 이 남자의 취미는 참 별나다고 생각했다. 아, 신제품 판매 알림이 뜨면 오픈런도 서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해 보니, 나의 글쓰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침침한 눈 비벼 가며 오랜 시간 고민하며 왜 쓰고 있는 걸까. 쌓아둔 집안일이 한가득이고 돈 받는 원고도 아닌데. 누군가에게 가르침과 감동을 주는 글도 아닌데. 어쩌다 클릭해 바로 창을 닫는 페이지가 될 수도 있는데.


처음엔 열심히 쓰다가 잠시 멈춰 있던 나에게 이날 남편의 우연한 질문은 부부의 취미에 대해 고찰하게 했다.


남편은 프라모델 만드는 게 좋아서 하듯이 나도 쓰는 게 좋으니 하는 거다. 그가 더 정교하게 잘 만들려고 장비를 늘리고 온갖 정성을 다 하듯, 나 또한 기왕 쓰는 거 잘 쓰고 싶어 단어 선택과 배열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적절한 비유와 은유를 찾기 위해 홀로 끙끙댄다.

도색과 먹선이 완벽한 건담을 들고 자랑할 때 아이들이 멋지다고 칭찬하면 아빠의 어깨가 올라가는 것처럼, 나도 칭찬 댓글을 받으면 으쓱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나이 들수록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면 좋다고 한다. 배우자와 같은 접점에서 교류하고 즐긴다면 저절로 가정생활에도 활력이 돋울 테니까.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라 한다면 우리 나이 대에는 골프, 등산, 배드민턴 같은 운동도 있을 것이고, 공연이나 영화관람, 여행 등 문화생활도 될 수 있겠다.

우린 둘 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시간과 비용의 제한이 있다 보니 자주 누리긴 어렵다. 좀처럼 같은 취미가 없어 고민이던 나는 이번에 다르면서도 같은 우리 부부의 취미를 발견했다.


프라모델 만들기와 글쓰기.

우리 부부는 취미 생활의 영역은 다를지라도 방향은 같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되, 서로의 관심사존중하고 인정해 주기, 각자의 시간과 노력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다 기분이 좋고 마음이 너그러운 날엔 칭찬도 더해주기로 다짐한다.


누가 아는가. 남편이 만든 저 처치곤란의 것들이 나중에 훌륭한 골동품이 되어 가치가 있을지. 내가 쓴 글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잠시 숨 돌리는 편안한 의자가 될어줄 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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