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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Dec 17. 2024

열두 살 크리스마스 선물은 셀프

엄마는 구매 대행이냐

크리스마스 D-8

이맘때쯤이면 아이들은 무슨 선물을 받을까 기대하겠지만, 부모들은 무슨 선물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아이가 어릴 땐 무슨 선물을 살까 하는 고민보다 설레는 마음이 훨씬 컸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얼마나 좋아할지 기대되는 마음이랄까.


얼마 전 백화점에 가니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각종 완구와 장난감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이제는 별로 눈길 갈 일이 없지만, 나또봇, 카봇, 터닝메카드 등의 각종 시리즈를 섭렵하며 시기별 출시 아이템들에 대해 온 관심을 기울이던 때가 있었다. 가격이 따끔해서 크리스마스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아이 품에 하나씩 안겨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째가 4살일 때 크리스마스 선물도 또봇 트라이탄이었다. 최신상은 아니었지만 뭐든 아이가 좋아할 거라는 마음으로 기쁘게 준비했던 추억이 예전 sns에도 남아있다.



그때의 신남과 셀렘이 글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택배 몰래 숨겨 두었다가 00이 잘 때 꺼내서 남편과 서로 낄낄대곤 다시 장롱 안에 꽁꽁 숨겨놓았다. 예쁘게 포장해서 짜잔~해줘야지 ㅎ"


2014년, 5살 되던 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이노포스 티라노킹. 당시 품절 행진으로 구입이 어려운 데다 온라인 몰에서는 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팔았지만, 백화점에 근무하는 친정오빠 찬스로 구매에 성공했었다. 포장하는 내내 뿌듯한 마음과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지 기대하설렘이 어렴풋 떠오른다. 그때는 선물을 챙기는 수고로움과 번거로움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을 알게 해 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



우리 아이들은 일찍이 산타 할아버지의 부재를 알았다. 대낮에 선글라스를 끼고 어린이집을 찾아온 산타 할아버지가 알고 보니 체육 선생님이더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크리스마스에 애써 산타 연기를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중 하나 눈여겨봐 두었다가 예쁘게 포장해서 트리 아래에 두면 크리스마스 아침에 넘치도록 행복해했다.


이랬던 아이들이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은 자기가 갖고 싶었던 것을 미리 고르기 시작했다. 부모의 역할은 일종의 구매대행. 효율성과 만족감을 따지다 보니 어쩌다 그리 돼버렸다. 미리 귀띔해 주면 엄마 아빠가 구입하겠지만, 대신 선물은 집안에 숨겨두면 찾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남편이 암호가 담긴 집구석 지도를 만들어 트리 아래 두면, 아이들은 지도를 해석하며 보물찾기 하듯 숨은 선물 찾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크리스마스 선물이 주는 따뜻한 기쁨이 채워질 것 같아서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해야 하는데, 고민이 생겼. 물건의 가격과 쓸모 때문이다. 열두 살 딸은 일찌감치 한 달 전에  장바구니에 제 선물을 스스로 담아놨다.


-엄마, 꼭 미리 주문해 주세요.


'티니핑=파산핑'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시기를 지났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을 무렵 12살 딸이 티니핑에 갑자기 꽂혀 버린 게 아닌가. 문제집을 한 권 끝내거나 학습 스케줄러 한 달을 채울 때 받는 선물도 모조리 티니핑. 티니핑 도감, 티니핑 스티커북. 티니핑 스퀴시북... 아직 구입하지 못한 것들은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에 담겨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티니핑 중에서 역대급 가격이 높은 최고 사양을 골라 놨다.



딸아,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브레이크를 걸어야겠다. 가격도, 용도도 선을 넘은 것 같아.

단순히 갖고 싶기만 한 충동적인 마음을 접고, 작은 선물로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 같구나. 크리스마스는 아기예수님이 약하고 낮은 자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이니까. 선물은 다른 티니핑 친구들을 찾아보자.



써둔 말은 그럴듯하고 상냥하지만,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이다. 이참에 크리스마스 선물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한해에 한번 기쁘게 받는 소중한 기쁨 온 데 간데 없어진 지 오래여서 일까. 대여섯 살 꼬맹이들의 감탄 어린 순수한 얼굴이 문득 그립다. 온라인마켓  장바구니에 알아서 선물을 담고 엄마에게 결제 요청하는 셀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니.

 

내 선물은 남편 장바구니에 확 담아버릴까 보다.

12월 28일 생일 선물과 퉁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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