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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Nov 14. 2024

사교육 안 하는 엄마가 학원 강사가 되었다

학원에서 시간을 때우는 아이들

"영어학원으로 되어 있는데, OO 독서논술 강사를 뽑는 게 맞나요? "


이력서를 내기 전에 재차 확인했다. 독서논술 수업을 해보고자 두드린 곳은 생뚱맞게 영어학원. 메인은 영어학원이지만 남는 강의실에서 독서논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른바 샵인샵 형태였다. 규모가 작고 수강생이 많지 않아 월급제 강사를 구하기는 어렵고, 파트타임 알바를 원하는 원장에게 나는 딱이었을 . 학원은 주로 늦은 저녁까지 수업하는데 이곳은 오후에만 수업이 나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첫날, 두리번거리며 들어간 빈 강의실. 책장에 책이 곡하고 독서 전용 책상이  있다. 당시 확장세를 띄던 독서논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곳은 초저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했다. 학생들이 책을 읽을 동안 강사는 독서 코칭과 첨삭, 관리의 역할을 하면 됐다. 그동안 공부하고 배운 지식들을 마음껏 펼치겠다는 포부는 며칠 지나자 곧 사그라들었다.


학원을 보내지 않고 상담만 다녀본 학부모가 갑자기 포지션을 바꾸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학부모 상담을 할 때. 도무지 입에 붙지 않는 '어머니'라는 말은 시어머니한테만 하던 말 아니던가. 원장은 갖가지 상담자료를 주며 학부모들을  등록시키도록 하게 했다. 그는 미심쩍고 별거 아닌 것도 화려하게 포장할 아는, 진정한 사업가였다.


사교육을 하지 않는 학부모가 학원 강사가 되려면 태세전환이 급선무. 학원 커리큘럼의 방식과 수업 효과를 기대하는 깐깐한 학부모 모드는 OFF. 학생의 독서 수준과 문해력을 올리겠다는 단호한 신뢰를 주는 강사 모드 ON.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거 정말 효과가 있나 의구심이 들면서 틈틈이 날카롭게 관찰자 모드가 발동했다.


물론 알아서도 척척 잘 해내는 아이, 어디 가든 잘하겠다 하는 아이도 분명 있다. 학원은 그런 아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지 않나. 잘 안 되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곳이거늘, 한동안 지켜본 아이들의 모습은 대개 안타까움이었다. 흔히 전기세 내러 오는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학부모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뭐하는지 관심 있게 봐주세요.
학원에서 하는 말만 믿지 말고,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보세요.


같은 페이지만 읽고 있는 중학생

하교 후 영어와 수학학원을 가기 전 짬을 내어 책을 읽고 가는 아이. 원장 말로 똘똘한 학생이라는 A는 독해 문제집 수준은 최고 레벨이었다. 주요 내용 밑줄 긋기나 요약도 나쁘지 않은 편이어서 나름 기대를 했다. 하나 반전인 것은 6학년 수준의 소설 한 페이지를 주야장천 붙잡는다는 것. 조는 것도 아니다. 한참 뒤에 책장을 넘길 때 내용을 물어보니 묵묵부답. 정해진 1시간의 독서 총량을 채우기 위해 읽는 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여기저기 방치되어 온 게 티가 났다. 워킹맘인 아이의 학부모는 수업진도에 별 관심 없다. 하교 후 빈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던 걸까. 몸과 마음 무겁게 앉아 있던 A는 끝나자마자 바쁘게 다음 학원으로 이동했다.  


같은 내용 돌려쓰는 무기력한 5학년 

사랑받는 외동딸 이미지에 브랜드 옷과 유행템을 장착한 B는 사춘기 초입에 들어섰는지 늘 과묵하고 조용했다. 2년째 재원 중인 B는 이미 타성에 흠뻑 젖었다. 읽고 싶은 책만 골라 읽고, 독후 양식의 패턴이 늘 동일하다. 뭔가 발전이 필요해 보이는데, 부모는 바쁘다. 영어학원도 다니기 때문에  원장은 B 학생 등록 유지에 힘을 쏟는다. 조금씩 요령을 피우며 뺀질대는 B를 보며 집에서 노는 내 아이가 떠오른다.

그래, 돈 내면서 시간 때우는 것보다 차라리 집에서 노는 게 낫겠구나.


대치동 라이딩 틈 사이 독서하는 3학년

한눈에 봐도 인싸 기질의 성격 좋은 C는 누구에게나 이쁨 받을 아이다. 외국살이 경험이 있어 영어 스피킹도 유창하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주 3회, 탑 3 대치 영어학원으로 라이딩을 했다. 독서 학원과 같은 층의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오거나, 아래층 태권도 학원에서 땀에 흠뻑 젖어 온다. 가끔 옆 건물의 중국어 학원 이야기도 한다. 만능캐를 만들고자 하는 엄마의 욕심이 엿보이는 이 아이는 늘 밝고 사랑스러웠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아이에게 독서논술 학원은 쉴 말한 물가였을지도. 힐링처럼 독서 학원을 찾았던 아이지만 그마저 시간이 없었는지 새 학년이 되면서 떠났다. 지금도 잘하고 있을까? 사춘기는 잘 지나고 있을까?


학원은 오래된 책들만 있어서 일부러 도서관에서 신간 도서나 좋은 책들을 빌려오고 교재도 만들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원장은 열정페이로 책임을 전가하며 최소한의 투자로 이익만을 원했다. 물론 정성과 노력으로 아이를 케어하는 학원이 있다. 시스템과 관리가 탁월하고 돈도 아깝지 않게 실력 향상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이 있다. 아쉽게도 내가 있던 곳은 아니었다. 마침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고, 원장에게 이직을 고했다.



내 아이들은 현재 중2, 초5

학습에 있어 중요한 시기인 것을 안다.

어느 정도 신뢰와 확신이 있다면 모를까 학원의 상술과 불안감 조장을 알기에 지금도 학원을 보내지 못한다.

글쎄,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잘할 있을까. 그건 엄마의 희망이겠지.

아이가 정말 필요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수업 방식과 효과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을 때쯤 보낼 생각이다. 우리 애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성숙할 날이 올까 의문이지만.  


이러다  이번 12월 기말고사 후 당장 아이 손 붙들고 학원 등록하러 가는 건 아닐까.

 

사진_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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