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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정 Oct 26. 2023

더 이상의 불안은 사양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나가버린 시간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확정된 과거와는 달리, 미래는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것이 없고 확실한 것이 없는 상황은 두 개의 길로 나뉜다. 한쪽은 기대와 설렘이고, 다른 쪽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나란히 놓여 있는 두 길은 종종 합쳐진다. 물론 다시 갈라지기도 한다.

 

앞날을 예측할 순 있어도 그것이 들어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계획을 세울 순 있지만 그대로 진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더 나아진다는 확신만 있다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린 미래를 알 수 없다. 태생적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보단 타고난 상상력을 발휘하는 쪽이 더 쉽다. 불안에서 시작된 상상력은 불안을 부풀린다. 


불안은 전염성이 강하다. 어느 순간 훅 들어온 불안은 당장 뭔가를 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마음이라도 편해질 것을 기대하며 노력과 시간과 자본을 투입해 보지만, 하나의 불안이 사라지면 다른 형태의 불안이 튀어나온다. 그것을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형태의 불안이 기어나온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불안의 속성이 불사조와 비슷하다는 것을.     


미래의 안정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고 현재의 만족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 다수가 가는 길을 고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고르는 사람도 있다.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 자유롭게 일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궤도 안에 있다고 해서 불확실성과 불안정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안은 유독 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더 집요하게 공격한다.      


하소연이라는 명목으로 온갖 종류의 불안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그들의 염려가 자신만의 것이 되길 원치 않는다. 나는 걱정거리가 차고 넘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아 보이면 편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단정짓거나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일 거라고 넘겨짚는다. 자신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부류로 취급하기도 한다.

    

충고랍시고 발화되는 말들은 ‘지금 그런 식으로 살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이 진짜 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주입된 것인지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미리 짐작해서 걱정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무런 근심 없이 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긍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불안감에 휩싸이는 경험을 피할 순 없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살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것처럼, 적당한 불안감은 시간을 더 알뜰하게 사용하고 일상을 더 짜임새 있게 살아가도록 독려한다.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삶이 있고, 거기엔 다양한 종류의 불안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한다. 불안해서 무언가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것도 있다. 그에 대한 결과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과도한 불안은 미래를 당겨오고 현재를 유예시킨다. 나의 불안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서 타인으로부터 전염된 불안까지 끌어 안을 순 없다. 버려도 모자를 판국에 꾸역꾸역 짊어지고 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짐은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 보지도 못하는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편이 낫다. 유예된 현재가 후회스러운 과거로 전락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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