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을 준비하며, 우리 부부에게 맞닿은 또 다른 문제는 양가 부모님께 우리의 세계여행 계획을 말씀드리는 일이었다.그런데 세계여행 가는데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할까? 낼모레 마흔입니다만....
부모의 허락이 필요한 나이는 사실상 언제까지일까?
20살? 경제적 독립을 이룬 시점? 결혼한 직후?
사실 나와 신랑의 나이가 더 이상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한 나이는 아니었다.
이미 우린 성인이었고 독립을 했고가정을 꾸렸고 아이까지 있는 1N년차 부부였고, 곧 마흔을 앞두고 있는 중년이니까.다만 양가 부모님 모두 응원해 주시는 여행은 하고 싶었다.
일단 시댁은 걱정하지 않았다. 워낙 자기주장이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자라온 남편인지라 시어머님은 걱정으로 머리를 싸매고 누우실 것 같지만 아버님께서는 크게 반대하실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좋은 식당에서 시부모님을 만나 맛있는 점심을 사드렸다. 그리고 신랑이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은 신랑과 시어머님의 대화이다.
- 신랑: 우리 내년에 세계여행 가려고~
- 어머님: 세계여행? 얼마나 가는데? 직장은?
- 신랑: 일단 여행 날짜는 미정인데, 직장은 지금으로서는 관둘 예정이야.
- 어머님:.....
- 아버님: 계획은 다 세운 거고?
- 신랑: 응 와이프랑 이미 이야기는 끝냈어.
신랑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님은 '아이고 사돈들을 무슨 낯으로 뵐까 모르겠다!'며 나에게 제발 너희 신랑 좀 말려보라고 하셨고 ~ 아버님은 이미 다 결정하고 이야기하는 걸 텐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응원밖에 더 없을 것 같다고 말을 아끼셨다. 그 뒤로 어머님의 엄청난 걱정이 이어졌지만, 아버님께서 '다 큰 성인이고 저 애들도 부모인데 다 생각이 있겠지'라고 슬그머니 우리 편을 들어주셨다. 하지만 말 한마디 없이 결정을 통보한 것에 대한 서운함은 살짝 비추셨다... 죄송해요 아버님 저도 얼떨결에 합류하는 거라....ㅠㅠ
문제는 우리 집이었다. 엄마는 둘째치고 친정아버지가 뭐라고 반응하실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성격이 대쪽 같은 아빠에게서 왠지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젊은 애들이 철없어서 그런다고 하실 것만 같았다. 평생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해 오신 친정아버지는 한창 나이에 직장을 관두고 세계여행을 간다고 하는 우리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신랑은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나와 신랑의 대화이다.
- 나: 사실 엄마보다도 아빠한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신랑: 아버님은 별말씀 없이 그래, 다녀와라! 하실 것 같은데?
- 나: 자기가 울 아빠를 몰라서 그래~울 아빠 성격 완전 불 같으시잖아..
- 신랑: 걱정하지 마, 우리가 허락받으며 살 나이는 한참 지났잖아.
- 나: 그럼 일단 최대한 미루다가 말씀드리자.
- 신랑: 그럼 속이는 거잖아. 어떻게 그래, 이번 주말 때 가서 말씀드리자.
나는 신랑이 우리 친정아버지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라도 살짝 운을 띄워야 하나... 프로걱정러인 나는 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주말이 되어 친정으로 갔다. 평소 친정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식당을 미리 예약했다.
다음은 나와 친정아버지의 대화이다.
- 아빠: 너네 유럽 간다며?
- 나: 아빠.. 어떻게 알았어?
- 아빠: 네 아들이 그러던데? 겨울에 유럽 가니까 자주 못 온다고?
- 나: 아니 우리는 오늘 밥 먹으면서 차분히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 아빠: 재밌겠네~ 잘 다녀와라.
이렇게 친정아버지와의 대화가 허무하게 끝났다... 우리 아들이 친정아버지와 손을 잡고 식당으로 오던 길에 미리 우리의 계획을 다 말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좋을까 내내 맘 졸이던 나의 걱정은 이렇게 끝이 났고, 신랑의 예상대로 친정아버지는 너무나도 쿨하게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친정 엄마 또한 "역시 요즘 애들은 생각이 다르다."며, "우리 세대는 생각도 못해본 일인데 너무 멋지다!"라고 하셨다. 더불어 "직장 관두고 간다니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니!" 하시며 응원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는 양가의 걱정과 응원을 받으며 세계여행을 나름 맘 편히? 준비할 수 있었다.
속으로는 많이 걱정하시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우리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양가 부모님들께 너무 감사했다.
PS. 40년 가까이 아빠 딸로 살았는데 친정아버지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건 신랑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