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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자적 Daisy Feb 21. 2024

Ep1. 어느 날, 평범한 내 삶에 세계여행이 들어왔다

낼모레 마흔, 얼떨결에 세계여행

"오늘 집 내놨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퇴근해서 들어온 신랑이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주말 우리 부부의 대화였다.


- 신랑: 우리 세계여행 가자!
- : 그건 좋지~ 우리 언젠간 꼭 가자고 했었잖아.

- 신랑: 그럼 내년에 가자!

- : 내년? 지금이 10월인데?

- 신랑: 응! 내년 1월 되면 바로 가자!

- : 자기야, 우리 직장인이야!! 세계여행을 무슨~ 마트 가자 하듯 쉽게 말해...

- 신랑: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그렇게 새해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신랑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며 세계여행을 가자고 말했고~ 나는 얼떨결에 동의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내 삶에 세계여행이 들어왔다. 

그것도 깜빡이 하나 없이 훅!!!


막상 세계여행을 하려고 하니 당장 우리 부부 앞에 놓인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당장 내년에는 집 전세 계약도 걸려 있었고 우리 둘은 금수저 아닌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세계여행을 다니는 여타 유튜버 부부들처럼 우린 딩크부부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10대의... 아들이 있었다.


세계여행을 시작하려면 아이의 학교 문제도 걸렸다. (왜 서로의 직장 걱정은 안 하는 건데....)

학원도 안 다니는 아이인데, 학교까지 빼가며 여행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주변의 아이 친구들만 봐도 영어 유치원부터 시작해 매일 국영수 학원은 물론 과학, 논술, 예체능까지 학원들로 가득 찬 스케줄을 소화하던데...

반면,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고 키울 때 아이가 스스로 원하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과도한 사교육을 시키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기에 그 원칙으로 인해 아직 아들에게 학습이란 학교 공부뿐이었고 교육이란 학교 방과 후에서 하는 과학실험과 농구가 전부였다.

그래도 이제 학년이 하나 더 올라가면 학교에서도 배우는 학습량이 늘어날 텐데~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이의 학교와 학습에 대해 걱정하는 나에게 신랑은 아래의 글을 보내주며 살아보니 분명 아이의 <공부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설득하였다.

더불어 "어차피 우리 아들 지금까지도 실컷 놀았는데, 조금 더 그렇게 지낸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라는 팩트 폭행도 함께.. 날렸다.

그렇다. 남편은 너 T야? 의 그 T다.....


<성장한 아들에게>
내 손은 하루 종일 바빴지.
그래서 네가 함께 하자고 부탁한 작은 놀이들을 함께 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너와 함께 보낼 시간이 내겐 많지 않았어.
난 네 옷들을 빨아야 했고,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해야 했지.
네가 그림책을 가져와 함께 읽자고 할 때마다 난 말했다.
"조금 있다가 하자, 얘야."

인생은 짧고,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갔기 때문에 어린 소년은 너무도 빨리 커버렸지.
그 아인 더 이상 내 곁에 있지 않으며 자신의 소중한 비밀도 내게 털어놓지 않아.
그림책들은 치워져 있고, 이제 함께 할 놀이들도 없지.
잘 자라는 입맞춤도 없고, 기도를 들을 수도 없단다.
그 모든 것들은 어제의 세월 속에 묻혀 버렸다.

한 때는 늘 바빴던 내 두 손은
이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다시 그때로 돌아가 네가 함께 놀아달라던
그 작은 놀이들을 할 수만 있다면...

<작자미상 글>


신랑이 보내준 위 글이 다시금 불안한 내 마음을 잘 다잡아주었다.

만일 지금처럼 시간이 흘러간다면, 저 글이 꼭 나의 미래가 될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났다.

나 역시도 퇴근해 돌아오면 아이가 놀아달라는 부탁과 아이의 종알거리는 대화를 집안일을 한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미루곤 했다.


만약 세계여행을 가면 아이와 함께 하는 온전한 시간을 보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가 더 커버려서 우리 부부의 품을 떠나기 전,

어쩌면 아직 부모를 필요로 하는 마지막 시기일 수도 있는 이 순간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보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한 시간을 갖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아이에게도 세계여행을 가자는 계획을 공유하였다.


- : 우리 내년에 세계여행 하려고~

- 아들: 세계여행?

- : 엄마랑 아빠랑 너랑 이렇게 셋이~ 갈 나라도 정해보고~

- 아들: 그럼 학교는? 친구들은?

- : 학교는 그 기간 동안은 못 다닐 것 같고...

- 아들: 그럼 엄마~ 나는 여행 안 가도 되는 거야?

 - : 뭐????


세계여행 갈 때, 아들은 집에 놓고 가는 건가요?...


세계여행을 가자는 계획을 아이에게 공유하니, 아이가 망설였다.

당연히 너무나도 좋아할 줄 알았건만... 

이건 오로지 나만의 기준, 어른의 착각이었다.

이미 아이에게는 본인의 생활이 있었고, 자신만의 커뮤니티도 생겨버린 것이었다.

아직 너무나 어리게만 보이는 아들이었지만,

아들은 성장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그래서 아이에게도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에게 결정을 강요할 순 없었기에, 얼마만큼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지 물었다.

그리고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3일 동안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답했다.

그리고 3일 뒤, 아이는 "함께 갈게요!"라고 말해주었다.

휴.. 내색은 못했지만 아들이 정말 안 간다고 할까 봐 얼마나 심장 졸였는지...


이렇게 우리 3인! 가족구성원 모두 세계여행에 합류했다.

그런데 다들 이렇게... 얼떨결에 세계여행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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