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뜨겁게 담아낸 나는
가을로 익어가는 들판 한가운데 섰습니다
차갑게 짓누르는 추위는
겨울을 향해 빠르게 내달으며
나를 바짝 말려 놨습니다
쌀알들을 한 가득 쏟아내고
빈 껍데기의 초라 함으로 남은 나는
다시 또 누군가의 식량이 되고
용품이 되고 보호재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 한 줌의 숨까지 토해내듯
모든 것을 주었는데도
여전히 내가 쓸모 있다는 것이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합니다
내 생의 긴긴 과정에서
단 한가지도 버릴 것이 없었던 나의 삶은
오로지 다른 생명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나의 생은
다른 생명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숭고한 사명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황량해 진 들판은 나와 함께
긴 겨울잠에 빠져 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