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극치라는 인도 아그라의 눈부신 타지마할 궁 앞.
그 꿈의 궁전을 마주하고 내뱉은 나의 첫 마디는 '아, 시원하겠다!'였다.
빨리 가서 저 하얀 대리석 그늘에 달아오른 몸을 자석처럼 척! 붙여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유네스코 담당자가 들으면 혀를 끌끌 찰 얘기지만, 새벽 6에도 미친듯이 뜨거운 인도의 여름은 몸의 '감성'기능을 관장하는 기관을 마비 시키는 엄청난 재주가 있나보다.
입구에서부터 꽁꽁 언 이글루처럼 보이는 다지마할 궁까지 엄청나게 긴 진입로를 걸어 결국 하얀 대리석에 몸을 붙여 보았지만, 그 것 역시 태양열을 피할 뾰족한 재주가 있을 턱이 없다. 그래도 뙤약볕 보다는 훨씬 낮은 온도인 '뜨뜨미지근함'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나마 견딜만 해서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이 궁의 주인 뭄타즈 마할의 묘와 그 왕비를 애타게 그리다 국고를 바닥내 가며 이 궁을 지은 무지막지한 로맨티스트 샤 자한 왕의 묘까지 콧노래를 불러가며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사랑의 크기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
하지만 그 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나란히 누워있는 그들의 묘를 보며 문득 궁금해 졌다.
이미 노산이라 아이를 열 넷이나 낳아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타지마할 미니어처라도 지어줄 수는 없는냐고 한국에 있는 장군에게 막 전화를 하려던 찰나! 언듯봐도 스무명은 넘을 것 같은 인도 사람들이 나에게 한꺼번에 다가와 무슨 말인가를 한마디씩 내뱉었다.
오! 좀 무섭다...
인도여행 4일째, 사진을 찍어 달래서 기쁘게 찍어주면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적지않게 상처를 받고 있던 터라 탐나는 모델이 아니면 카메라를 들지도 말아야 겠다 마음 먹고 있던 차엿다. 큰 돈을 요구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모델료인 샘치고 몇 푼 건내줄 수도 있지만, 눈을 마주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말랑말랑해진 마음을 나눈 뒤에 정을 담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자 마자 느닷없이 날아오는 현금요구는 마음을 훔치는 강도짓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몇 번, 아팠다.
인도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내 어깨에 걸려 있는 카메라를 가르키며 점점 내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포위된 나는 거절할 기회 조차 없이 그들 앞에서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 행색으로 봐서는 영락없이 모델료를 요구하는 장사꾼일게 뻔했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고 복잡해진 내 머릿 속은 빠르게 사람들의 머릿 수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아홉, 열, 열하나...
아니 이게 대체 얼마야?
타지마할에서 단체 사진 찍어주고 20불 뜯긴 비극적인 이야기가 추억으로 남겠군 생각하며 이미 나름대로 줄 맞춰 단체촬영 모드로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포커싱을 하고 셔터를 눌렀다.
원, 투, 쓰리! one more, 원, 투, 쓰리!
모두 세 장.
수줍게 렌즈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카메라를 내리기가 무섭게 경직된 몸을 풀고 사람들은 다시 내게 다가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또 무슨 말인가를 하나 둘 던졌다. 고맙다는 말 같았다. 현금 요구는 없었다.
그들은 인도 시골마을에서 단체로 타지마할로 관광을 온 사람들. 그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외국인에게 사진을 찍히는게 신기하고 재밌을 뿐인, 말하자면 나처럼 그들도 관광객이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착한 사람들을 강도로 만들어 놓고 흩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그 중 한 여자가 다가왔다.
"나 독사진 하나만 찍어 줄래요?"
여행을 하다보면 서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각자의 언어로 얘기를 하지만, 그 말이 마음으로 전달되는 순간 정확하게 번역이 돼서 들리는 불가사의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아...네, 물론"
반짝이는 깊은 눈과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매혹적인 눈 주름을 갖고 있는 그녀는 내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얼굴을 작은 모니터로 확인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사진을 뽑아 그녀의 방에 걸어 줄 수 없어 아팠다.
그리고 그녀의 미소는 매일, 그 날의 나를 꾸짖는다.
Taj Mahall, Agra_In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