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잠이 오지 않아 꼼짝없이 누워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 문득 장군이 물었다.
아마 그도 잠이 오지 않았던 모양.
"우리가 작년에 갔던 거기 이름이 뭐였지? 료칸 있던 동네."
"거기? 음... 다카노? 였던가..."
"거기 참 좋았었는데... 그치?"
다카노가 아니라 '다카오'는 교토에 있는 아름다운 지역.
사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은 몰랐고 우리가 예약한 료칸이 그 곳에 있어서 알게 된 곳이다.
작년 꼭 이맘 때 우리는 그야말로 '무릉도원'과 같던 다카오에 있었다.
한국보다 온도가 조금 더 낮은 다카오, 그래서 가을이 더디게 찾아 오는 이 곳은
11월 중순부터 단풍 시즌이라 온 동네가 불이 난 것 처럼 빨간 단풍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물론 그 때는 현지인들도 단풍놀이를 즐기러 찾아오기 때문에 최고의 시즌을 맞는 다카오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고. 료칸도 레스토랑도 가격이 두 세배로 뛰는 것은 당연지사.
우리가 머물렀던 10월은 비수기여서 이 지역을 모두 전세낸 것 처럼 사람이 없었다.
성질 급한 단풍잎 하나가 저 혼자 빨갛게 단장을 하고 있을 뿐.
아침에 우산을 쓰지 않고 걸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만큼 촉촉한 가을비가 내렸고
우리는 료칸을 둘러싸고 있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숲 속을 천천히 걸었다.
하늘을 찌를 듯 키가 큰 단풍나무들은 대체 나이를 얼마만큼 먹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고,
그 나무들 사이에서 불어오는 향기롭고 상쾌한 바람을 폐 깊숙히 들이킬 때 마다
수명이 1년씩 연장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팔을 벌리고 계속 깊은 숨을 쉬었었다.
그 초록 잎들이 모두 울긋불긋하게 되는 그림같은 다카오를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땐 분명 사람들에 치여 '힘겨운' 단풍 구경이 될 것이 뻔하니
좀 이른 10월의 고요하고 푸른 숲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카오는 매년 6월에서 7월 초에 반딧불이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는 자연기념 지정지인데다
기온도 낮아 가을 뿐만 아니라 여름에도 인기가 무척 좋다고 한다.
단풍보다는 불행하게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반딧불이를 보러 여름의 다카오에 다시 오고 싶다.
산 아래 조용히 키요타키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키요타키 강을 료칸 전용 다리로 건너면 그 곳에 잊혀지지 않는 하루를 선물한
아름다운 료칸이 있었다.
온기가 사라진 '찬바람'이 불고 겨울 옷을 하나 둘 꺼내게 되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아름다운 지난 가을의 추억 한 조각을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