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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Mar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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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orite101, 그들이 사는 세상 노희경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모든게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지는 상태.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세상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상태. 길인지 낭떠러진지 모르는 상태. 우린 가끔 이론 화이트아웃 현상을 곳곳에서 만난다. 절대 예상치 못하는 단 한순간. 자신의 힘으로 피해갈 수 없는 그 순간. 현실인지 꿈인지 절대 알 수 없는. 화이트 아웃 현상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어느 한날 동시에 찾아왔다. 그렇게 눈앞이 하얘지는 화이트아웃 현상을 인생에서 경험하게 될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잠시 모든 하던 행동을 멈춰야만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도 이 울음을 멈춰야한다. 근데 나는 멈출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누군 그게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초라함의 문제이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문제이고 사랑이 모자라서 문제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지는 데 결정적으로 적합한 이유는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일 뿐. 준영일 다시 만나면서 대체 내가 왜 예전에 얘랑 헤어졌을까 이렇게 괜찮은 애를. 과거에 내가 미쳤었나 싶게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은 안했지만 천만번 다짐했다. 다시는 얘랑 헤어지지 말아야지. 근데 또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내가 저질러놓고도 저절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난 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것 같다. "+"6년 전 그와 헤어질 때에는 솔직히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 땐 그는 단지 날 설레게 하는 애인일 뿐이었다. 보고싶고 만지고 싶고 그와 함께 웃고 싶고 그런 걸 못하는 건 힘은 들어도 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젊은 연인들의 이별이란 게 다 그런 거니까. 미련하게도 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주었다. 그게 잘못이다. 그는 나의 애인이었고 내 인생의 멘토였고 내가 가야할 길을 먼저 가는 선배였고 우상이었고 삶의 지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욕조에 떨어지는 물보다 더 따뜻했다."+"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사세, 화이트아웃편의 명대사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을 좋아한 이유는, 첫째 노희경, 둘째 방송가 사람들, 셋째 리얼스토리라는 점이었다. 노희경작가야 이시대 최고 인간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니 설명할 필요없고, 내가 사회초년시절 뛰어다녔던 방송가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그 시절이 하나씩 되돌아봐져 좋았고, 어찌나 대사가 리얼한지 내가 직접 겪었던, 혹은 선배들이 내게 했던, 혹은 후배들이 그러했던, 그리고 내가 그러했던 에피소드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애정이 갔다. 치기 어리게 덤볐던 프로그램에서 깨지고 칭찬받고 울고 웃고 방송시절. 몇날밤 무박으로 촬영하는 시간에도 또렷하게 살아있던 나. 무식하기 그지없는 다큐에선 출연자 대신 50미터 상공에서의 번지점프, 나를 좋아라 예뻐라 해주었던 숱한 연출자 선배들, 한솥밥 먹으며 서로 위로하고 끌어안아주던 작가친구들 등. 하나하나 너무 리얼해서 무작정 매달렸던 그사세. 휴가 대신 전편을 내리 스트레이트로 한번 보고 싶다. 아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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