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제일의 절경 속에서 만나는 역사와 축제
푸른 남강을 굽어보는 벼랑 위, 웅장한 누각 하나가 천 년 세월을 지탱하며 서 있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에 압도되지만, 곧 그 안에 새겨진 치열한 전쟁의 흔적과 재건의 이야기에 숙연해진다.
CNN이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선’으로 꼽은 진주 촉석루는 단순한 풍류의 무대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지켜낸 역사적 현장이자 오늘날에는 축제의 빛으로 다시 살아난 공간이다.
촉석루는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진주성 안에 자리한다.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한국 3대 누각으로 꼽히지만, 촉석루만의 특별함은 전시에 진주성을 지키던 남장대(南將臺) 역할을 겸했다는 점이다.
고려 고종 때 창건된 이래 수차례 보수되며 진주의 심장부를 지켜왔고, 평화로울 때는 선비들이 시를 읊던 고장이었으나 국난 앞에서는 수많은 피와 땀이 스민 전쟁터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은 이곳에서 남강을 내려다보며 불리한 전황을 지휘했다. 단 3,800명의 병력으로 2만 명의 왜군을 막아낸 진주대첩은 촉석루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세월은 누각을 시험했다.
6.25 전쟁 때 불타 사라진 촉석루는 한때 국보였으나 잿더미가 되었고,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1960년 마침내 복원에 성공했다. 현재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이지만, 그 가치는 국보를 뛰어넘는 재건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남강은 다시 평화와 희망의 무대가 되었다. 매년 가을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대첩 때 군사 신호와 안부를 전하기 위해 띄웠던 등불에서 유래한다.
수만 개의 등이 강 위를 수놓는 장면은 전쟁의 흔적을 치유와 낭만으로 승화시키며, 촉석루와 함께 진주를 대표하는 가을 풍경이 되었다. 낮에는 누각에 올라 역사를, 밤에는 유등의 빛을 즐기는 여행은 진주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진주성은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촉석루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군인 1,000원, 어린이 600원이며 만 65세 이상 어르신은 무료다. 신발을 벗고 올라야 하므로 편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촉석루는 CNN이 인정한 천하의 절경이자, 임진왜란의 대첩이 빚어낸 영광의 현장이며, 시민들이 힘을 모아 다시 세운 희망의 기념비다. 남강을 굽어보며 누각 마루에 앉는 순간,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감동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