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보다 아름다운 설경 명소
전남 장성의 산자락을 따라 백양사로 향하다 보면 공기가 먼저 변한다. 나뭇가지마다 피어난 눈꽃과 고요한 물소리는 겨울이 이 절집에 어떤 얼굴을 남기는지 고스란히 알려준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설경이 내려앉은 순간의 백양사는 그 기억을 단숨에 넘어서는 분위기를 품고 있다.
백암산 아래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고로쇠나무와 갈참나무가 눈을 머금고 서 있다. 그 숲길 끝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쌍계루다.
연못을 사이에 둔 이 건물은 계절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데, 겨울이면 얼어붙은 물 위로 처마가 드리워져 한 폭의 겨울 산수화를 완성한다. 사진가들이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순간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극락보전, 사천왕문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전남의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들이라 계절에 따라 더욱 깊은 느낌을 준다.
특히 극락보전은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겨울 햇살이 처마 아래 걸릴 때 고찰의 고요함이 더 짙어진다. 사찰 이름에 얽힌 흰 양의 설화, 그리고 뒤편 5,000여 그루 비자나무가 이루는 천연기념물 숲이 이곳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약사암과 운문암, 천진암 같은 암자들이 고요하게 자리한다. 특히 약사암에 오르는 20분 남짓의 길은 겨울에 더욱 매력적이다.
눈 덮인 백암산 능선이 펼쳐지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백양사는 작은 점처럼 조용히 빛난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 멀리서 울리는 풍경 소리, 나뭇가지에서 눈이 떨어지는 소리만 섞여 들리며 산사의 깊이를 체감하게 한다.
백양사의 겨울은 단순한 설경을 넘어선다. 눈 내린 직후면 검은 기와와 흰 눈, 그리고 맑은 하늘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숲길마다 차분함이 스며든다.
연중무휴에 입장료와 주차료까지 무료라 온전히 풍경 속에 머물기 좋다. 전남 장성에서 겨울 여행지를 찾는다면, 눈이 내려앉은 백양사는 잊히기 어려운 순간을 선물하는 최적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