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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스키 Mar 05. 2024

이상적인 세계는 어디에

‘이상적인 세계’라는 주제로 작년 여름밤에 쓴 글입니다

  

  그간 회사 일이 바빠서 계속 아홉 시쯤 퇴근했다. 원래는 열 시쯤 자는데 늦게 퇴근하니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어 넷플릭스라도 하나 보고 잤더니 수면시간이 계속 뒤로 밀렸다. 또 운동은 안 빼먹고 하고 싶어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집을 나갔다. 이렇게 만성적 수면 부족에 스트레스를 더한 채로 이 주 정도 살다 보니, 4월에 다쳤다가 제법 다 나은 것 같은 허리가 다시 탈이 났다. 쉬기도 애매해서 계속 출근을 했다.


  이럴 때면 바라는 건 정말 단순해진다. 허리가 안 아프면 좋겠다. 한 일주일 정도 일이 없어 좀 일찍 퇴근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쉬고 싶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불과 몇 달 전 내 생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몇 달 전의 내가 굉장히 행복했느냐? 또 그건 아니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여러 고민들이 있었다. 불과 얼마 시간도 안 지났는데 지금의 내가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아니 석 달 전의 내자신아 너는 튼튼하게 주말마다 테니스도 치러 다니고 일찍 일찍 퇴근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는데 마음껏 행복하지 않았다고? 정말 복에 겨웠구나!


  생각해 보면 항상 그렇다. 바쁠 때는 ‘한 일주일이라도 널널하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한다. 어딘가 아플 때는 ‘여기만 안 아프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일들이 해결되면 소원이 없기는커녕, 또 다른 소원이 생긴다. 그것도 엄청 고매한 인류 평화 같은 소원도 아니고, 그냥 지금 단계보다 딱 한 단계 더 좋아진 상태를 바란다. 별 노력 안하고도 조금 더 돈이 많아지길, 시간이 생기길, 건강해지길 바란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나의 얄팍한 소망이 이런 식이라면 정말 끝도 없어진다.

  내가 지금 돈을 잘나가는 연예인 정도 번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 생각하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지만, 또 막상 그 입장이 되면 아마 지드래곤처럼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오길 바라겠지. 그렇다고 지드래곤처럼 돈을 벌게 되면 거기서 멈출까? 그때는 또 이재용처럼 돈이 많기를 바랄 수도 있다. (지드래곤과 이재용 사이에도 많은 단계가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나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적인 세계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면서도 그렇다. 머리로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계라든가, 약자가 소외당하지 않는 세계 같은 걸 말하고 싶지만, 욕망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란 고작 “피자의 영양성분이 완벽해 매일매일 피자만 먹어도 되는 세계” “운동을 하지 않고 운동 생각만 해도 저절로 근육이 붙는 세계” “안 좋은 자세로 12시간 동안 앉아있어도 허리가 튼튼한 세계” “어디선가 갑자기 돈이 생겨서 욕조가 있는 집에 살게 되는 세계” 이런 거다. 그냥 나는… 꽁으로 뭔가 얻고 싶어 하는 거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것과 상관없이 행복이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다. 어제 또 슬픈 마음으로 야근을 하는 와중에 후배가 잠깐 커피라도 사 오자고 했다. 날씨가 좋으니 좀 걷자고 하며 카페를 한.. 삼십 개쯤 지나 아주 멀리 있는 카페에 갔다. 너무 바쁘지만 회사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은 똑같아 일부러 길을 빙빙 돌았다. 바람은 선선하고, 보도블록은 낮의 햇볕으로 아직 적당히 따뜻하고, 놀러 나온 사람들의 기분 좋은 흥분이 느껴졌다. 크롭탑을 입은 멋쟁이들로 북적거리는 맛집 골목을 지나가며 “배 내놓고 자면 감기 걸리지 않아요?” 이런 아재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새로 생긴 핫도그 집을 보며 다음 주에 가보자고 하며 천천히 걸었다. 즐거웠다.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다. 땡볕아래 뛰어다니며 땀을 흠뻑 흘린 후 냉면 국물을 들이킬 때.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집의 침대에 드러누워 관절을 쭉쭉 펼 때. 주말 아침 일찍 한강에 나가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만족감이 차오르고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다는 기분이 든다. 허리가 좀 아프고 출근하면 또 할 일이 쌓여있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런 결핍들이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더 이상 꽁으로 뭔가 더 가지고 싶지도 않다. 명상 수업을 듣고 나서, 그 순간들이 명상과 닮아있다는 걸 알았다.


  명상의 목표랄까, 지향점 같은 건 현재에 머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호흡 명상도 하고 걷기 명상이나 먹기 명상도 한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감각과 감정을 또렷하게 느끼며 최대한 현재에 머무르라고 한다. 나는 또 시키는 건 열심히 하니까 3박 4일 정도의 명상 캠프를 하면서 프로그램을 최대한 따라갔다. 마지막 날에는 이십 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퇴소후 제대로 된 명상을 다시 한 적은 없지만, 그 뒤로 나는 그렇게 현재를 제대로 느끼는 순간이 그냥 명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늘 그렇게 현재를 느끼며 살 수는 없다. 언제나 해야 할 것이 있고, 했으나 미련이 남은 것들이 있고, 가지고 싶은 게 있고 또 버리고 싶은 것이 있는 게 사람이니까. 불행한 마음이 생기거나 욕심이 생길 때는 산책을 한다. 최대한 미래에 살지 않으려고 한다. 과거에 남아있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의 바람을 느끼고, 입 안의 커피 맛을 느끼고, 스치는 감각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이상적인 세계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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