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이스키 Mar 18. 2024

2인분 나눠먹기

남들이 비건 이야기를 쓸 때 눈치없이 쓴 그냥 먹는 이야기

  

  너는 고기를 잘 굽는다. 예전에 고깃집에서 알바를 했다고 한다. 매번 고기를 구워주는 게 미안해서 슬그머니 가위를 들고 고기를 잘랐더니 한숨과 함께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내 눈에는 별로 이상할 게 없었는데 뭔가 성에 차지 않았나보다. 그 뒤로는 난 그냥 자연스레 먹는 사람이 됐다. 구워주는 고기를 날름날름 받아먹는다.


  고기를 자를 때는 꼭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는 그런 너를 앉은 채로 우러러본다. 나는 입안 가득 넣고 먹는 걸 좋아하니 내 몫은 크게 자른다. 너는 작게 끊어먹는 걸 좋아하니 작게 자른다. 항상 내 앞의 고기가 빨리 없어진다. 그럼 자기 앞의 고기들을 슬그머니 밀어놓는다. 나는 평균보다 크니까 당연히 평균보다 더 많이 먹어야 된다고 한다. 나는 밀어놓은 고기의 절반 정도를 재빠르게 먹고 또 절반의 절반을 너의 앞에 가져다 놓는다. 잠깐 드는 미안함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고기 앞에서 녹아버린다.


  뭘 같이 먹으면 늘 그런다. 돈까스도 자기 조각 중 가장 큰 가운데 조각을 찾아서 내 앞에 놓아주고, 내가 물냉과 비냉을 고민하다 물냉면을 시키면 너는 비빔냉면을 시켜 한 젓가락 덜어준다. 국밥이랑 나오는 공깃밥도 꼭 한 숟가락씩 덜어준다. 너는 어릴 때부터 밥을 먹으면 매번 한 숟갈씩 남기는 게 버릇이라고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밥을 먹으면 늘 한 숟갈씩 모자란 기분이 든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2인분을 나눠 먹는다. 남는 것도 모자란 것도 없다. 그렇게 요철 없이 꼭 맞는 순간들을 느낄 때 마음은 빈틈없이 단단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 시티오브소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