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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스키 Apr 02. 2024

패스트 라이브즈 - 전생 혹은 지나간 “나”에 대해


  또 낚였다. 설 연휴 <추락의 해부>를 보러 영화의 전당에 갔더니, 마침 때맞춰 개봉하는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작품들의 예고편을 잔뜩 틀어줬다. 저것도 재밌겠고, 이것도 재밌겠고, 하는 와중에 뻔하지만 남미새(남의 사랑에 미친 새X)인 내가 가장 잘 낚이는 종류의 문구… '우아하게 포착하는 사랑의 뉘앙스’라는 카피가 유려한 유태오의 얼굴 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패스트 라이브즈>? 기억해 둬야지… 하고 굉장했던 본영화를 보고 났더니 영화적으로 상당히 고양된 상태가 되어 앞서본 예고편도 함께 좋은 기억으로 각인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패스트 라이브즈>가 드디어 개봉했다. 다소 최루성의 멜로 드라마를 예상하고 갔지만 다 보고 나서는? 하 역시 아카데미 놈들 만만치가 않네. 그건 사랑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랑 영화가 아니었다. 바로 이번 주의 주제인 정체성, 긴 시간에 거쳐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또 이별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스포주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유명 영화감독의 딸인 나영, 그리고 그와 초등학교 시절 잠깐 호감을 나누던 해성이 있다. 나영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성인이 된 후 다시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이주한다. 헤어진 지 12년이 지난 후, 20대가 된 둘은 페이스북에서 서로를 찾아 화질이 좋지 않은 비디오챗으로 시차를 넘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자주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 서로를 만나러 가기엔 각자의 삶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흐른다. 그렇게 결말 없는 관계에 회의를 가진 그들은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되고, 또 12년이 흐른다. 그 사이 해성은 한국의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고, 노라(나영)는 작가가 되어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만난 미국인과 결혼을 했다. 해성은 노라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 오고, 둘은 24년 만에 실제로 재회한다. 영화는 24년 전 초등학교 때의 이야기, 12년 전, 그리고 현재를 초, 중, 후반부로 나눈다. 다소 늘어지는 전개의 초중반 부를 지나면 후반부에서 본격 아름다운 대화들이 펼쳐진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이야기 지만 조금 더 노라의 관점이다.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든 그레타 리 감독이 유명 영화감독의 딸이고,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하니 많은 부분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해성보다는 노라의 사정과 감정을 더 디테일하게 알고 있는 편이다.

  이 영화에서 유태오가 연기하는 해성은 나영의 삶과 노라의 삶을 이어주는 메타포의 역할이다. 최대한 평범한 한국 남자를 표현하려고 한 노력은 이해하나 유태오가 연기하는 평범한 한국 남자? 가능할 리가 없다. 여기에서 서구권의 관객과 한국 관객의 감상의 결이 좀 나뉘는 게 아닐까 싶다. 메타포가 메타포의 역할만 하기엔 너무 넘치고 뭔가 함의가 있을 것 같은 캐릭터로 느껴지는 건, 교포 배우인 유태오가 가진 힘이다. 감독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실제로 해성을 페이스북에서 만나기 전 노라는 이민 전 자신에 대해 마치 제 3자를 이야기하듯 가볍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성과 대화를 한 이후로 노라는 나영의 삶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내가 떠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너를 만났을까? 우리는 사랑했을까? 헤어졌을까? 수많은 가정법이 만드는 수많은 나영-노라의 모습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능성으로 충분히 존재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영화의 제목인 ‘Past Lives, 전생의 개념이 등장한다. 보통의 사람은 지금의 삶 이전의 삶을 전생이라고들 하지만, 영화의 나영-노라와 같이 삶에서 전폭적인 변화를 겪을 때, 그래서 그 이전의 정체성과 분리된 것 같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될 때 Past Life는 전생이 아닌, 이번 생에서 지나온 삶을 일컫는 단어가 된다. 하지만 나영이 겪어온 Past Lives가 지금의 노라와 완전히 구분될 수 있나? 아닐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나영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코드 중 가장 선명한 것은 ‘언어’다. 정체성은 언어로 규정할 수 있을 때 탄생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도 나영-노라의 이중언어는 꽤 큰 비중으로 다뤄진다. 결혼한 지 오래된 남편과 “사실 너 잠꼬대는 한국어로 해” “그래? 난 전혀 몰랐는데”라는 대화를 할 때, 우리는 다정한 남편의 얼굴에서 작은 체념과 외로움을 느낀다. 이 사람을 사랑하고 깊이 이해하지만, 노력만으로는 절대 이해하고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결혼 생활 내내 인식한 표정이다. 언어가 만드는 간극은 해성과 노라, 노라의 남편이 함께 바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노라는 처음에는 해성과 남편 사이에서 통역을 하지만, 점점 해성과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나중에는 아예 해성 쪽으로 몸을 틀어 둘만의 대화를 한다. 카메라는 마치 바에 두 사람만 있는 듯 둘을 나란히 보여주다, 천천히 줌 아웃하며 옆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남편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타임라인상으로는 극 후반에 나오지만, 영화의 오프닝으로도 쓰인다.


  한국계 캐나다인, 다시 결혼으로 미국인이 된 노라의 교포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내 입장에서는 노력해도 다소 피상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노라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나마 많이 봐서 익숙한 미국 교포의 서사와도 조금 다르다. 노라와 해성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노라는 해성을 떠나보내고 남편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얼핏 나영에게도 작별을 고한 것 같지만, 여전히 남편이 닿을 수 없는 꿈의 공간에는 여전히 나영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한국인으로, 동양인으로, 캐나다인으로, 미국인으로,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작업 자체가 노라의, 감독 그레타 리의 정체성이 되고, 그 치열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전생을 딛고 인연이 만들어지듯, 개인이 만들어지는 삶의 수많은 과정을 어렴풋하게나 스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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