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와 아이들의 아침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알람에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남편과 아이들을 깨운다. 시리얼이나 과일을 깎아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
화장실이 하나인 집이라 순서에 맞게 착착 움직이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곤란해진다. 아침마다 절도 있게 식구들을 움직이는 나는 우리 집 조교다.
바쁜 아침이기에 사과를 깎아 먹거나 셰이크 한 잔을 급하게 들이켜면 내 아침식사는 끝이다. 시어머님은 아침도 못 얻어(?) 먹고 출근하는 아들이 안쓰러우시겠지만 그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도 결혼 전에는 세수하고 옷 입고 방에서 나오면 식탁에는 엄마가 손수 우유와 바나나를 믹서기에 갈아 만든 바나나우유 한잔과 이쁜 자태를 뽐내는 사과 한 접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엄마가 해주는 아침은 고사하고 내가 그 엄마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누가 누구의 아침을 챙길 수 없는 맞벌이 부부의 아침 출근준비는 언제나 전쟁이다. 아이들의 간단한 아침은 엄마가 준비하고, 부부의 아침은 알아서 해결하는 각개전투이다.
남편은 어르신도 아닌데 건강프로를 즐겨본다. 엄마들이나 볼법한 <만물상> 같은 프로에서 나오는 건강식품은 꼭 한 번씩은 따라서 먹는다. 언젠가는 수란도 만들어 먹는다고 주방을 휘저어서 성질을 돋우더니 꽤 오랜 시간 아침마다 생마늘 다섯 개를 먹고 있다.
싱크대에 기댄 채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마늘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고 있는 남편이 이뻐 보일리가 없다. "저리 비켜 봐!" 아이들 물통에 물을 담아야 하는데 왜 꼭 싱크대 앞에 서 있는지 아침부터 아내의 잔소리도 잊지 않고 꼭꼭 챙겨 먹는 남편이다.
"도대체 아침에 생마늘은 왜 먹는 거야?"
아침은 챙겨주지 않지만 아침부터 나는 마늘냄새도 싫고, 멍 때리고 마늘을 씹고 있는 남편도 싫다. 마늘이 싫은지 남편이 싫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생마늘이 몸에 좋데. 아침에 잠도 깨기 좋고."
만물상인지 고물상인지 어느 의사 선생님이 생마늘을 전파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얼굴도 모르는 의사 선생님까지 미워진다. '선생님 때문에 제가 아침마다 고약한 마늘냄새 풍기는 남편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과라도 한쪽 먹어. 지하철 타면 냄새나" 아이들 먹으라고 깎아 놓은 사과 한쪽을 건네어본다. 남편의 건강보다 지하철에서 남편에게 나는 마늘 냄새를 맡을 타인의 후각이 더 걱정되는 나는 누구의 아내란 말인가. 아무리 한국인이 마늘소비량 세계 1위라지만 누가 출근길부터 나는 마늘 냄새를 좋아할까 싶다.
"껌이라도 씹고 가라고~" 출근뽀뽀를 하려는 남편 얼굴을 손으로 밀어버렸다. 아침부터 아내의 잔소리도 보약처럼 챙겨 먹더니 뽀뽀까지 챙기려는 욕심쟁이 남편이다.
향수라도 뿌리라고 할까? 아니다. 마늘냄새와 향수냄새가 섞이면 40대 아저씨 향이 더 고약해질게 분명하다. 참자 참아.
주경야독으로 퇴근 후 공부하고 늦게 오는 남편이기에 아침 출근 전 30분 만나는 게 전부인 부부이다. 다정한 대화 한 마디 없이 마늘 씹고 출근하는 남편의 엉덩이를 팡팡해서 내 보낸다. 각자의 전쟁터에서 하루를 잘 보내고 무사귀환을 해 보자는 진한 동지애가 느껴지는 아침이다.
이제는 아이들 준비를 시키고 내가 먼저 출발할 차례다. 아침 1시간 전쟁이 따로 없다. 중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오늘 하루 잘 지내라고 인사를 하며 빠르게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고 앞코를 세워 콩콩 찍어 발을 맞춘다.
현관에서 먼저 나간 남편의 향이 느껴진다. 마늘 냄새를 맡은 코를 살며시 닦아 본다. 이이는 벌써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고 있겠지? 마늘냄새로 옆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끝끝내 타인의 후각을 걱정하는 나는 애타주의자인 것인가. 이어폰을 끼고서 음악을 들으며 출근할 남편에게 전달되지 않을 말을 허공에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