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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Nov 30. 2023

가출한 여인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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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찰의 추적을 받다. 


찜질방에서 나온 이른 아침. 소시지가 된 눈을 겨우 뜨고서 버스를 타고 국제시장에서 하차했다. 시장 이곳저곳 정처 없이 걸어 다니다 도착한 곳은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상영하고 있는 정말 영화 속 그 극장 앞이다. 아무 생각 없이 티켓을 구매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전날에도 펑펑 울다 잠든 가출한 새댁은 영화 내용이 너무 슬퍼 또 꺼이꺼이 울었다. 대낮이라 관람객이 많이 없어서 다행이지 완전 극장민폐녀가 될 뻔했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로 올라갔다. 언제까지 부산에 있을 수도 없을터. 이제는 감정을 정리하고 이성적으로 이혼을 준비할 시간이다.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해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이 남자는 나를 찾기는 했을까? 내가 어디 갔나 궁금하긴 했을까? 꺼져 있는 전화기에 애가 좀 탔으면 좋겠는데. 우리 아기는 잘 잤을까?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 아들 사진이라도 보고 싶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지~잉~" 전원을 켜자마자 진동과 함께 [언니]라는 두 글자가 나타났다. 나보다 일곱 살 많은 언니랑은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자매들이 팔짱 끼고 다니는 쇼핑 한번 해 본 적이 없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언니에게 한번 털어놓지 않았다. 평상시 전화통화도 잘 하지 않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혈육이란 이런 것일까? 언니라는 두 글자만 봤는데도 입술이 떨려 전화를 받기가 어려웠다.

"야! 니가 언니가 없어, 오빠가 없어! 언니가 경주에 있는데 부산에는 왜 가 있어!"

"언니이....."

언니는 내가 부산에 있는 것도, 무슨 일 때문에 와 있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흐느껴 울기만 했다. 우는 거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경주 오는 마지막 기차시간 얼마 안 남았어. 그거 타고 경주로 와. 알았지? 응?"

"응, 언니. 경주로 갈게"

그래 경주에 언니가 있었지.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고 경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잉" 언니와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진동이 울린다. 처음 보는 번호다.

"나작가님 되십니까?" 진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네... 전데요. 누... 구세요?"

"아 네, 저는 부산경찰서, OO 소속 OOO라고 합니다. 남편분께서 나작가님을 찾아 달라고 신고를 하셔서...."

뭬야? 나를 신고 했다고? 왜? 이혼하자고 가출했는데 나를 왜 경찰에 신고했지? 이 남자 이거 안 되겠구먼. 집에 가봐 가만 안 둘 거야. 진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경찰 아저씨는 나를 붙들고 이런저런 말을 이어가고 있다. 어, 나 부산역 가야 하는데. 언니한테 가야 하는데...

좀 전까지 울던 여자는 어디로 가고 갑자기 부산 경찰아저씨의 전화를 받는 내 모습이 웃기기까지 했다.

"저기, 경찰 아저씨. 음... 그러니까... 지금 제가 죽으려고 부산 온 줄 아시는 거죠?" 경찰아저씨는 속내를 들킨 듯 조금 당황한 듯하면서도 계속 나를 달래고 있었다.

"경찰 아저씨 저 안 죽어요. 풉"

"하하하 그렇죠? 죽긴 왜 죽습니까?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고 경찰아저씨도 호탕하게 웃는 상황이 발생했다. 울다가 웃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다. 뭐가 나고 있나 엉덩이가 간질간질하다.

"저 기차 타고 경주에 있는 언니네로 갈 거예요. 이렇게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 정말 괜찮아요. 죽으려고 부산에 온 게 아니에요."

"아, 그러면 저희가 부산역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친절하게도 나를 부산역까지 모셔다 드리겠다는 경찰아저씨의 호의를 거절하고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소시지 눈을 하고선 사연 있는 여자처럼 경찰차를 타고 이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4. 귀하의 위치 추적이 종료되었습니다.


경주행 KTX에 올라타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언니는 내가 부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남편이 말했나? 경찰아저씨 전화는... 남편이 신고를 했다고 했지? 아내 가출 신고를 하면 경찰이 전화를 하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추리는 이어지는데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경주역 플랫폼을 빠져나가는데 또다시 "지잉~" 문자가 온다.

[귀하의 위치 추적이 종료되었습니다]

아따 경찰 아저씨 여태껏 저를 추적하고 계셨던 겁니까? CCTV로 나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걱정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가출한 아줌마 찾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민중의 지팡이 대한민국 경찰 사랑해요.


경주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언니를 보자 조금은 쑥스러웠다. 마흔을 앞두고 있는 다 큰 어른이 가출이 뭐람. 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언니는 눈이 퉁퉁 부은 동생이 안쓰러운지 뭐 그런 놈이 다 있냐고 남편을 혼내고 있었다. 우리 언니는 F가 분명하다. 사건의 전말을 따져 가출한 나의 잘못을 짚어 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를 봐 왔던 형부는 아직도 나를 귀여운 동생처럼 여긴다. 머리를 쓰윽 쓰다듬으며 잘 쉬다 가라 한다.

언니랑 치맥을 하며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남편 욕을 실컷 했다. 지가 뭔데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며 또 울어댔고, 언니는 앞으로 그놈이 또 속을 썩이면 언니랑 오빠한테 이르라고 했다. 친구건, 동기간이건 속상한 마음을 말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러겠노라고 큰 소리를 쳤다. 아, 이래서 핏줄이 좋은 거구나.


막내딸의 가출 소식은 부모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빠는 다 큰 딸이 아들도 버리고 가출했다는 사실에 못마땅해하셨고 엄마는 잘했다고 하셨다. 그 옛날 내가 태어나기 전 아빠랑 싸우고 짐을 싸서 기차역까지 갔다가 언니랑 오빠 생각에 울면서 집에로 돌아갔었노라고. 본인은 가출에 실패했었지만 가출을 감행한 막내딸에게 얼마나 속이 상하면 그랬냐고 잘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나의 속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는 것을. 오로지 막내딸의 속상한 마음만 보고 계셨다는 것을. 어서 어미 기다리는 새끼한테 돌아가라고 하시는 마음을.

부산에서 하룻밤, 경주 언니네서 이틀밤을 자고 나서야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그래, 이혼을 하든 다시 살든 한 판 붙어보자.



5. 남편의 입장


눈앞에서 사라진 아내가 전화도 꺼 놨다. 약간 짜증이 났지만 저녁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 아내가 걱정이 된다. 당신과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영웅이도 잘 키우라는 아내의 카톡을 보고 전화를 했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

'이 여자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하려는 모양이구나!' 남편은 그대로 경찰서를 갔다고 한다. 문자를 보여주며 아무래도 아내가 나쁜 선택을 할 거 같다고... 문자를 본 경찰은 심각성을 느끼고 자초지종을 상세히 알려 달라고 했다. 남편은 이사를 하고 집 문제로 다툼이 잦았고 아내를 힘들게 했다고 자수(?)를 했다. 뭐 그만한 일로 사모님을 그리 힘들게 했느냐며 혼이 났다고 하니 고것 참 샘통이다. (민중의 경찰 사랑해요 대한민국 경찰 만세) 남편의 사연을 들은 경찰은 즉시 나의 위치 추적에 들어갔다.

[부산] 슬쩍슬쩍 검색을 위해 전원을 켰던 나의 전화기는 경찰의 레이더망에 포착이 되었다.

"부산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무도 없습니다"

"거 뭐 한다고 사모님을 힘들게 해서 부산까지 가게 만듭니까"

남편은 또 한 번 경찰에게 혼이 났다고 하니 깨소금 맛이다. (경찰아저씨 사랑해요, 두 번째 만세. 제 주위 사람들이 경찰을 욕한다 해도 전 언제까지나 경찰 편에 서겠어요.)


비상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새댁이 나쁜 마음을 먹고 가출했다. 위치추적! 서울의 경찰은 그렇게 가출하여 부산에 있는 새댁을 잡기 위해 부산 경찰과 공조를 이루었고 나를 잡아내기 위해 위치를 추적함과 동시에 나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

집을 나가도 친정으로 가지 않을걸 안 남편은 처형에게 전화를 해서 아내가 가출을 했고 부산에 가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말았다. 남편, 언니, 경찰이 나를 찾기 위해 번갈아가며 전화를 하고 있다. 참 여러 사람 고생시켰다. 부산타워에서 아이 사진을 보고자 스마트폰 전원을 켰다가 언니와 경찰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나의 추적은 일단락되었다. 아니 경찰의 추적은 경주역에서 일단락이 되었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가 죽을까 봐 충격을 받았고 다시는 집 문제로 아내를 괴롭히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가출을 감행할 만큼 집 때문에 싸우고 힘들었는데, 살아보니 참 좋은 동네라고 하는 남편. 이 집에서 둘째도 낳고 알콩달콩 만 9년을 살았다. 이제 10년 차에 접어드는 이 집. 아이들도 크고 집이 좁아서 이사를 해야 하는데 자꾸 남편이 발목을 잡는다.

"요즘 대출 이자가 너무 비싸. 내년 봄에 알아보자."

내년 봄에 알아보자, 가을에 알아보자, 다시 내년 봄에 알아보자. 몇 년째 반복 중이다.

"아니, 이 집 싫다고 그렇게 날 들볶아서 가출까지 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왜 눌러앉으려는 거야!!"

가출했던 이야기만 하면 나를 흘겨보는 남편이다.

이사 좀 가자 제발! 나는 글을 쓰는 고상한 여자 이므로 응사 나정이 아버님께 욕 한사발 맡기면서 오래전 가출기를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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