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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Nov 29. 2023

아이를 뒤로 하고 가출을 해 버렸다.

1. 그로부터의 탈출.


결혼 후 세 번째 맞이하는 집이자 첫 自家였다. 2년마다 이사를 해야 하는 전세살이에서 벗어나 작은 빌라지만 드디어 우리 집이 생긴 것이다. 더 이상 계약만료기간에 맞춰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눈치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사로부터의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첫 自家라는 설렘도 잠시 새 집으로 이사하고부터  남편과의 말다툼이 잦아졌다. 내가 먼저 집을 알아보고 남편도 둘러 보고서 계약한 집이다. 그러나 남편은 이사하고부터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자를 들먹이기 시작했고, 꼬투리를 잡아서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일쑤다. 큰 소리 내며 싸우기도 하고 말 섞기 싫어 외면하기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이사했던 집에서 매일 싸움만 계속 됐다.


1년 9개월이라는 연애 기간이 짧았던 걸까? 이 남자가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었나 싶게 남편은 모든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 투성이었다. 우리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 첫 집인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란 말인가. <기쁘고 감사하며 살자>가 모토인 긍정적인 나로서는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긍정이 부정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부정이 긍정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행복하려고 산 집인데 싸움의 원인이 되니 집이 싫어졌다. 내가 이러려고 이사를 왔나. 몸과 마음이 지옥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아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주일 아침. 냉기가 가득한 차 안을 벗어나 교회에 도착했고 어머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유아부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아득하다. 본당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 순간.

'떠나야겠다, 이 남자로부터 멀리 떠나야겠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7호선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이렇게 무모할 수가 있을까. 어디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 체 부산행 티켓을 손에 쥐고 말았다. 하필 날씨까지 우중충할게 뭐람 창 밖의 흐린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울다 지쳐 잠들고, 잠에서 깨면 또 울면서 부산에 도착했다.



2. 부산에서의 하룻


즉흥적인 가출이었다. 작은 가방 안에는 지갑과 스마트폰 달랑 하나. 부산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눈앞이 깜깜하다. 나는 여기 왜 왔을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이 조금 들어 있고 내 이름으로 된 카드에도 돈이 얼마 없다. 나는 왜 아이를 키운다고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던가. 돈이 없으니 갈 곳도 없다.

부산에는 한두 번 온 게 다이고 가본 곳이라고는 관광차 들른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허심청, 수변공원뿐이다.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하다.

스마트폰에 "남편"이라고 뜨는 두 글자조차 보기가 싫어 스마트폰을 꺼 두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에 검색을 위해 잠시 스마트폰 전원을 켜 본다. 혹여나 남편의 전화가 올까 봐 갈 만한 곳만 빠르게 검색한 후 다시 전원을 꺼 버렸다.


"아저씨, 찜질방으로 가 주세요" 소시지 눈을 한 여자가 무턱대고 찜질방을 가자고 한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서울에서 부산은 꽤 멀었고 창 밖의 부산은 이미 밤이 찾아왔다. 부산의 거리는 내 맘과 다르게 반짝반짝 빛 나고 있었다. 택시는 나를 부산 달맞이공원의 어느 큰 찜질방으로 안내했다.

찜질복으로 환복하고 찜질방에 들어간다. 달맞이고개라는 언덕에 있어서 그런가 찜질방 통창으로 부산의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숨이 탁 트이는 거 같다.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살 수 없을 거 같아. 난 너무 많이 지쳤어.

영웅이도 당신이 잘 키워. 나 찾지 마]


스마트폰 전원을 켜서 남편에게 이혼 결심을 전하고 다시 전원을 꺼 버렸다. 이 남자와 살다가는 내가 말라죽을 거 같았다. 아이를 두고 내가 키우네, 네가 키우네 싸우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이혼하면 편부 아니면 편모가정일 텐데 싸우는 게 의미 없다 느꼈다.  아이 없이 사는 삶은 상상할 수 없지만, 아이가 보고 싶어 정신병에 걸려 어느 병동에 감금되어 생을 마감한다 하더라도 그냥 이렇게 끝내고 싶었다.


'꼬르륵~' 아, 내가 하루종일 굶었구나. 배가 고픈지도 몰랐는데 뱃속에서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들어온 게 없다고 신호를 보낸다. 간단하게 미역국밥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미역국을 먹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흐를까. 두고 온 아들이 보고 싶다. 엄마 바라기, 엄마 껌딱지인데 엄마 없이 잠은 잘 자고 있을까? 미역국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간이 세지고 있다.

"아빠 아빠 아빠" 아이가 아빠를 부른다. 딱 내 아들 나이만한 키의 귀여운 남자 아이다. 아이가 나를 보고 웃어준다. "엉~엉~엉~"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이 이름 모를 아이와의 눈 맞춤으로 꺼이꺼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고 말았다. 울음이 터졌으면 먹던 미역국 숟가락을 내려놓을 것이지, 미역국 남기면 식당 아주머니한테 혼날 사람처럼 미역국을 퍼 먹고 있다. 꺼이꺼이 울면서, 코를 훌쩍이면서까지. 아이 아빠는 울면서 미역국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정신 나간 여자 앞에서 아이를 안고 사라졌다.


이혼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재산을 나누겠지? 그래봤자 얼마 안 되는 돈. 그 돈으로 혼자 살 수 있는 오피스텔은 구할 수 있을까? 아이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게 해 주겠지? 설마 아이를 안 보여 줄라고... 나랑 떨어져서 엄마를 낯설어하면 어떡하지? 아이가 입학하는 건 볼 수 있을까? 사춘기가 돼서 "엄마는 나를 버리고 떠났잖아"라고 날 밀쳐내면 어떡하지? 그렇게 나는 아이와 멀어지게 되는 걸까? 그러면 나는 아이가 보고 싶어 말라가겠지? 정신줄을 놓을지도 몰라. 그러면 나는 정신병원에서 아이를 그리워하다 죽게 될까?

쓸데없는 상상은 끝을 모르고 가지를 뻗어 나갔고, 까무룩 잠든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경찰이 나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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