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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Nov 14. 2023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세요?

꺼진 불꽃. 그리고 온돌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 분 계신가요?"

어느 댁에서 부부싸움이 거하게 있었는지, 맘카페 오늘의 인기글에는 남편을 성토하는 어느 여인의 분노가 화를 토해내고 있다.


미쳤어요? 누가 남편을 사랑해요~

으이그 저 인간... 애들 아빠라서 삽니다.

남편이랑은 의리로 사는 거 아닌가요?


글쓴이를 위로하기 위함인지, 누가 누가 남편을 더 미워하나, 누구 남편이 더 못났나 겨루듯 남편으로 인한 화병 성토대회가 열리고 있다. 댓글창의 열기가 아주 뜨겁다.

남편 흉보기라면 내가 빠질쏘냐. 어디 우리 집 남편 흉 좀 보고 공감 좀 받아 볼까?


"저는 남편이 너무 좋아요. 살수록 더 좋아요. 저는 남편을 너무 사랑해요"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인가? 남편이 외국인인가? 살수록 뭐가 좋은 거지? 남편을 사랑한다고?

모두가 피에 굶주린 좀비처럼 남편을 물어뜯고 있는데 우하한 백조처럼 남편을 사랑한다는 여인이 등장했다. 그 여인의 댓글에는 결혼 몇 년 차냐, 남편이 뭘 해 주냐,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냐, 온갖 질문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저 평범한 주부이고 결혼 15년 차 남매맘이라고 했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고, 함께 살수록 더 믿음직스럽고 남편을 의지하고 더 나아가 아직도 남편을 보면 설레고 사랑한다고 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 남편을 보고 설레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심근경색 아닌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수능 수리영역보다 더 큰 거리감이 느껴진다.

자고로 결혼한 지 10년 이상이 되었으면 남편은 집에 두면 근심덩어리, 밖에 데리고 나가면 짐덩어리, 마주 앉으면 한숨덩어리, 더 오래 보다 보면 원수 덩어리 아닌가?

그런 남편을 보면 설레고 사랑한다고? 저 여자는 심근경색이 있는 게 분명하다. 건강검진 받은지 오래됐나 걱정이 다 된다.


가끔 페이스북에서 몇 년 전 오늘이라고 사진과 글을 보여 줄 때가 있다. 신혼 초의 나를 마주하기가 참으로 어색하다. 그곳의 나는 남편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어머 웬일이야.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미쳤나 봐.

봐도 못 본 척, 그때의 내가 어디가 잘못된 사람인 양 페이지를 넘겨 버린다.

"으이그, 언니! 결혼할 때 언니가 형부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사랑이 철철 넘쳤다고."

오랜만에 만난 친한 동생에게 맘카페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말한다. 내가 남편을 사랑했었다고.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고 하는 바람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 나도 남편을 사랑했었구나. 농담반 진담반으로 결혼 후 남편과는 의리로 산다고 한다. 우리는 함께 아이들을 키워내야 하는, 고지를 향해 서로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동지가 아니던가. 동지에게는 배신할 수 없는 의리가 필요하다. 나는 그 의리에 충실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여보, 사랑해"

나에 비해 남편은 애교도 많고 사랑표현도 많이 한다. 요즘에도 자고 일어나면 입술을 쭉 내밀고 포옹을 하며 사랑한다 말한다. 무뚝뚝한 아내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듣기 힘든 남편은 "자기는 나 사랑해?" 수시로 물으며 입술을 내민다.

"사랑하지. 가인아 빨리 밥 먹어라" 쑥스러운 나는 들숨에 사랑한다 말하고 날숨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버리곤 한다. 그만 좀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런 거 없이도 부부는 사랑을 기반으로 의리를 가지고 사는 거 아닌가? 사랑했으니까 결혼했겠지. 아니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다.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을 뿐.


 @ pixabay


중년의 사랑은 온돌이라 했다. 젊은이의 그것처럼 불꽃 튀는 스파크는 없어도 우리네 전통 온돌처럼 뭉근한 따땃함이 아랫목을 감싸고도는 그런 온기 말이다. 그래야 자녀들이 따뜻하게 자랄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온돌이 꺼지면 자녀들이 추위에 떤다고. 그래서 온돌방 불이 꺼지지 않도록 온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나는 이 온돌 같은 사랑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거 아닐까? 가끔씩 온돌방이 냉기가 돌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 다시 따뜻한 불을 지피니 말이다.

그게 무슨 사량이냐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온돌의 온기도 사랑이라고. 


"저는 살아갈수록 남편이 너무 좋아요. 남편을 사랑해요" 백조 같은 이름 모를 여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내심 부럽기도 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남편이랑 살아갈수록 너무 좋다고 남편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다. 저 수 덩어리를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불꽃 튀는 스파크를 다시 한번 일으켜야 하나? 아서라. 혹시라도 심장에 무리가 올까 걱정이다.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살자. 갑자기 사랑한다고 입술 내밀고 달려들었다간 남편이 나를 심장내과로 이끌지도 모르겠다.

누가 뭐래도 남편을 향한 내 사랑은 온돌이다. 그거면 됐지 뭐.



대문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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