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인지, 지지난주 주말인지 엄마의 기억은 벌써 아득하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잊고 싶었던 건지 그날이 멀게만 느껴져. 어느덧 키도 나만큼 커 버린 너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들어왔지. 엄마는 너무 놀랐지만 침착함을 유지한 체 너에게 물었어.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친구들이랑 싸웠니?"
"죽고 싶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쿵.
쿵쿵...
엄마는 심장이 너무나 뛰었어. 내 아이의 입에서 "죽고 싶어"라는 말이 나오리라고는 단 한순간도 상상해 본 적이 없거든.
"친구들이 나 보고 찐따래. 엉~ 엉~"
꺼이꺼이 우는 너를 엄마는 안아주지도 못했어.
"혼자 시간이 필요해?" 끄덕끄덕 하며 계속 울고 있는 너를 방에 두고 엄마는 밖으로 나가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단다.
너의 울음이 그치면 어떤 이야기를 해 줘야 할까. 도대체 밖에서 어떤 다툼이 있었길래 너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온 걸까...
"친구들이 너를 찐따라고 놀린다고 해서 네가 진짜로 찐따가 되는 게 아니야. 너는 누가 뭐래도 엄마아빠의 소중한 아들이야. 친구들과는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거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말어."
친구들과의 다툼이 있을 때마다 친구는 필요 없다고 혼자서만 지내겠다고, 전학을 가고 싶다는 너에게 엄마는 달래도 보고 위로도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좋은 날도, 흐린 날도 있는 거라고 늘 너를 보듬어 주었어.
"평상시는 개학이 싫었는데 이번에는 개학이 두려워... 그 녀석들을 마주치기가 싫어"
개학을 앞두고 너의 입에서는 두렵다는 말이 나왔고 엄마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보라며 평상시와 다름없이 바쁘게 출근을 하고 말았지. 그렇게 엄마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 일을 잊고 말았어. 너도 더 이상 아무 말고 없었기에 그냥 잘 되었나 보다 하고 말이야....
"어머니~ 안녕하세요? 영웅이 태권도 관장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이가 태권도에 있을 시간인 저녁 7시 30분 아이의 태권도 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련을 하다가 아이가 다쳤나?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아이의 부상 이야기는 아니었다.
"네, 관장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아이 아빠랑 한번 찾아뵐게요"
하... 30분간의 긴 통화를 마친 내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이 입에서 죽고 싶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아이를 힘들게 했던 사건의 새로운 전말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온전히 피해자로만 알고 있던 내 아이의 잘못과 그날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에 대해 관장님을 통해 듣게 되었다.
영웅이를 오래 봐 오신 관장님은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이 생기게 된 배경과 내 아이의 잘못에 대해서도.
"사춘기 사내 녀석들이라 욕도 하고 몸의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영웅이에게도 친구들이 손을 내밀 때 쿨하게 받아줄 줄 아는 게 진정한 사나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제가 더 영웅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 있게 지켜보겠습니다."
태권도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들은 사건의 전말은 놀림을 받아 울기만 했던 내용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이도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기에 내일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화해를 하라고 다시 한번 아이를 단속하며 짧은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머리가 아프다. 아니 마음이 아프다.
"엄마~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예요~"
"친구들이랑 화해는 했니?"
"네, 학교에서 같이 나왔다가 이제 막 헤어져서 집에 가는 길인데요?"
"그래, 잘했어"
근무 중이라 더 긴 대화는 못했지만 짧은 통화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친구와 화해를 하고 다시 기분 좋은 6학년 남자아이로 돌아왔는데 내 마음은 계속 복잡하기만 하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이에게 어떤 훈육을 하며 사춘기를 잘 지내도록 할 수 있을까. 사춘기가 처음인 아이도 소용돌이치는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텐데. 나도 사춘기 아이는 처음 키우는지라 덩달아 마음이 소용돌이친다.
어젯밤 태권도 관장님이랑 통화를 한 이후로 마음이 무겁다. 이 또한 내가 겪어내야 하는 사춘기엄마의 성장통인가 보다. 나 살기도 마음 복잡하고 시끄러운 요즘인데 한 아이의 성장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무게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